노트북이 고장이 났다. 1월 17일에 한국에 돌아가니까 귀국을 약 40일 남짓 남겨두고 블루스크린이 떠버린거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던 일이지만 그래도 너무 갑작스럽긴 했다. 다행히 사진은 미리 페이스북에 비공개로 다 업로드해놓아서 사진 날라간 걱정은 안해도 된다. 다행이다 정말. 외로움과 정면으로 마주칠까봐 글쓰는게 무서워서 일기 쓰는걸 게을리 한 터라, 사진은 1년 프랑스 생활을 기록한 유일한 내 사료들이다. 가장 걱정되는건 내 불면증이었다. 노트북이 없이, 정확히 말해서 인터넷 없이 내가 편하게 잠들 자신이 없었다.
최근 며칠간 나를 우울하게 하는 소식을 몇 개 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리영희 선생님의 타계소식이 나를 가장 슬프게 했다. 대학교 1학년때, 도서관에서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처음으로 읽었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어렵게 읽히는 책도 아니었다. '이런 사람이 말로만 듣던 행동하는 지식인이구나' 싶었다. 많은 언론인을 아는건 아니지만,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이만큼이나 치밀한 '사실'로 살아낸 분이 흔치 않을 것 같았다. 이상으로 삼을 언론인이 있다면, 리영희선생님이 적당하겠구나 했었다. 그런 분이 돌아가셨다. 평소 자신의 소원이 자기가 쓴 책이 더 이상 팔리지 않아 인세가 0원이 되는거라고 하셨단다. 리영희선생님의 책이 필요없을만큼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히 지내셨으면 한다. 그렇지만 어쨌든, 선생님의 타계소식은 당분간 계속 마음이 아플 것이다.
여러가지 우울함에서 유발하는 불면증을 극복하는 나의 비장의 무기는 영상속에 파묻히는거였다. 글을 쓰는건 너무 무서웠다. 내가 쳐져있을때 쓴 일기를 보면 솔직히 정신에 이상이 있는건 아닌가 싶을정도로 조울의 간격이 컸다. 그러면 독서가 가장 좋은 방법인데, 프랑스에선 한국책을 구하기 쉽지 않다. 그나마 같이 껑에서 지내는 한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가져온 프랑스 번역소설(귀욤 뮈소 류의.....정말 별로다.ㅠㅠ)을 읽거나 하는게 전부였다. 그러니까 외로움을 잊게 해줄 가장 좋은 방법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각종 영상에 의지하는거다. 특히 드라마와 예능프로를 집중적으로 봤다. 여백없이 빽빽하게 찬 자막속에서 걱정없이 웃고 떠드는 그네들을 보면 내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모든 것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거다. 그리고 눈이 지치면 잠시 폭풍 트윗을 한다. 이 얘기 저 얘기 들으면서 떠돌아다니면 내 기분은 모든 것에 대해 무덤덤해진다. 솔직히, 참 용기없는 행동, 인정.
그런데 지금은, 그 드라마들을, 예능프로그램들을 볼 수 없는거다. 참 한심한 일이다. 인터넷없이 우울함과 외로움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모르다니.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제는 밤새 노래를 불렀다. 옆방애가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뭐 할수없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것도 아니고 그냥 노래를 불렀다. 자작곡도 만들었다. 심지어 제목조차 불면증이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음표들을 알아볼수없다. 1회용 자작곡이었지만 만족한다. 노래가사를 짓다가 에딘버러에서 여행했을때 노트에 끼적인 메모를 발견했다. 조앤롤링이 해리포터를 처음 쓰던 Elephant house라는 카페에서 커피와 감자요리를 먹으며 쓴거다.
약 두달전에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그러니까 아직도 불면증에 대처할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작곡을 계속 불러대며 잠을 청해볼 작정이다. 새로운 방법이 나타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일기를 써야지. 내 뇌세포를 꽉 붙들어놓는 영상들의 이기에서 당분간 피해있는 것도 새로운 바캉스가 될 것같다.
그런데 낮엔 계속 잠이온다. 밤에만 잠이 안온다. 이런건 불면증이 아니라 그냥 야행성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