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9일~10일. 열두번째~열세번째 날.
아침 일찍 베를린 중앙역에서 코펜하겐으로 떠났다. 이 날도 하루종일 기차를 타는 일정. 베를린->함부르크->Flensburg(플렌스부르크..겠지?)->코펜하겐 의 복잡한 여정이었다. 특히 환승시간이 함부르크 역에서는 18분, 플렌스부르크 역에서는 고작 11분(-_-;;;;;)밖에 없었기때문에 상당히 긴장했다.
그래도 일단 무사히 함부르크 역에서는 플렌스부르크까지 가는 레지오날레 지역선으로 갈아탈 수 있었다. 한 고비를 넘겨서였는지 여유가 생겨서 창밖을 찍어봤다. 마침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막 그쳐서 무지개도 보였다.
문제는 플렌스부르크에서 터졌다. 사실 함부르크에서 기차가 좀 지연됐는데, 플렌스부르크에서 다음 열차를 11분만에 갈아타야하는 나로서는 기차의 지연이 몹시 불안할 따름이었다. 1분이 지연되면 난 기차를 갈아탈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게되는 그런 제로섬게임의 난처한 상황에서, 이 열차가 무려 15분을 늦어버린 거다. 마음이 몹시 불안했지만, 뭐 설마 국제미아가 되겠나 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차분하게 먹었다.
다행히(?) 플렌스부르크에서 코펜하겐으로 가는 기차가 아직 떠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맞은 편 기차가 왠지 코펜하겐으로 갈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무작정 아무나 붙잡고 "코펜하겐?????" 이라고 다급히 물었고,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찰나 곧바로 기차 문이 닫히기 바로 직전에 탈 수 있었다. 한 가지 날 찜찜하게 한 건 내가 DB BAHN 사이트에서 기차를 예약할 때는 플렌스부르크에서 코펜하겐으로 가는 기차가 이체(ICE)였는데, 이때 딴 기차는 이체가 아니라 덴마크 기차였라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일단 탔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역무원한테 물어보니 코펜하겐 행이 맞다고해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내 표를 살펴 본 역무원은 내게 "You have wrong ticket"이라고 해 내게 큰 혼란을 안겼다.
알고보니, 내가 하루 일찍 베를린에서 떠난 것이다. 어쩐지, 베를린에서 6박을 예약한 것 같았는데 아무리 새봐도 다섯밤밖에 잔 기억이 없어서 좀 의아하다 싶었다. 아니, 의아하다고 생각만하고 그냥 넘어갔다니. 날짜 개념 없이 돌아다녔더니 결국 이런 멍청한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천사같은 덴마크 철도 역무원은 날짜도, 기차도 모두 다르고 오직 행선지만 같은 내 표를 인정해줬다. 하루 먼저 떠나는 바람에 이날 하루 베를린 숙박비를 날리고, 코펜하겐에서의 숙소도 없는 셈이었지만 나는 기분이 금방 좋아졌다. 노래를 들으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긴 여행에 이런 일도 있는거지'하며 창밖을 구경했다.
이 기차는, 바다를 건너는 환상적인 기차였다.
나는 이 기차 안에서 덴마크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인지 알게 됐다. 기차가 코펜하겐에 도착하기 직전, 나는 멍청하게도 기차 안에서 빨간색 털모자를 잃어버려 뒤적뒤적 부산스럽게 바닥을 살폈다. 그러자 내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물어봤고, 나는 그냥 모자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했을 뿐인데..... 그 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너무나 고맙고도 미안하고 황당한 상황에 나는 잠시 어리벙벙했고, 잠시 뒤 세 칸 정도 앞에 앉은 어떤 아주머니가 'I found it!'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나한테 다행이라며 등을 토닥였다. 감정 표현을 잘 안하는 츤데레의 나라에서 온 나로서는 어떤 의미에선 다소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코펜하겐 기차역에 도착한 뒤 나는 너무나 피곤하고 빨리 숙소를 잡고 싶은 마음에, 예약했던 호스텔에 들어가 하루 먼저 체크인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덴마크에서 무려 택시(-_-)를 탔고, 약 5분 정도 탔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 가까이 냈다. 그리고 호스텔에서도, 미리 예약을 하지 않고 당일로 하루치 요금을 내야했기 때문에 내가 예약했던 3일치 숙박비에 육박하는 8만원을 하룻밤 요금으로 내야했다. 호스텔은 Generator Copenhagen 이었는데, 시설, 위치, 스탭들의 친절도와 청결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다만 직접 취사를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다음날 나는 우연히 알게 된 덴마크에서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있는 한국인 B오빠를 만나 하루 무료 가이드(?)를 받게 됐다. 일단 코펜하겐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가는 곳 중 하나인 인어동상을 보러갔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조금 걸어야 나온다. 베를린보다 훨씬 더 북쪽으로 올라와서인지, 확실히 체감 온도가 확 낮아졌다.
인어공주 동상은, 이게 전부였다.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동상은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오줌싸개 동상과 더불어 가장 실망스러운 볼거리 두 손가락에 꼽힌다고 한다.
그래도 뭐, 기대한 게 워낙 없어서였는지 온 게 후회될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인어공주 뒤로 펼쳐져있는 바다와 해변의 공장(?)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꽤 독특하다.
인어공주 동상 쪽에서 코펜하겐 왕궁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흐린 날씨가 뭔가 겨울의 북유럽스러워서 싫지 않았다.
코펜하겐 왕궁에 도착했다. 직접 들어가지는 않고 그냥 겉에서 보기만 했다.
왕궁의 재미는 역시 근위병을 보는 거다.
왕궁 바로 건너편에는 왕족들이 예배를 드린다는 교회가 있다. 고전적인 외관과 달리 내부는 현대적인 장식을 갖춘 교회였다.
여기서 조금 더 걸으면, 내가 그토록 고대하던 뉘하운이 나온다.
파스텔톤 색색깔의 외벽 아래 자유로운 분위기의 노천 카페. 약간 프랑스의 옹플뢰흐 느낌이 났는데, 색감이 조금 더 따뜻한 느낌이다.
블럭으로 만든 것처럼 앙증맞다. 뭔가 동화속에 나오는 북유럽 집을 본 느낌이어서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