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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라 더 쓸쓸한 '쪽방촌' 독거노인(2013-09-19)

추석이라 더 쓸쓸한 '쪽방촌' 독거노인

찾아오는 이도 찾아갈 곳도 없어 "서울역 가서 사람 구경"


2013-09-19 06:00

CBS노컷뉴스 전솜이 기자


추석을 앞둔 서울역은 분주하다. 두 손은 선물 꾸러미로 가득하고, 고향에 내려간다는 설렌 마음에 사람들의 표정은 한껏 들떠있다. 


분주한 서울역을 마주 보고 있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은 쓸쓸하다. 방을 둘러싼 벽을 친구삼아 외로이 지내는 노인들에겐 찾아오는 이도, 찾아갈 이도 마땅치 않다. 


민족 대명절이라며 쪽방 바깥 세상은 시끌벅적하지만, 2평도 채 안 되는 그야말로 ‘손바닥만한’ 방은 평소처럼 고요하다. 사람이 그리운 이들에게 추석은 더없이 외롭기만 하다. 


명절 분위기에 한껏 들뜬 서울역. 이 서울역을 마주보고 있는 동자촌 쪽방촌의 추석은 쓸쓸하기만 하다.(사진=CBS노컷뉴스 전솜이 기자)


◈ “서울역 가서 사람 구경” 추석 외로움 달래는 쪽방촌 할아버지 


동자동 쪽방촌에 산지 올해로 꼬박 10년째. 88살 김모 할아버지에게 추석은 그저 ‘사람 구경하는 날’이다. 


“갈 데가 없어요. 서울역 같은데 바람쐬러 가서 사람 구경하고 들어오는 거지. 갈 데가 없으니까”. 


추석은 어떻게 보내실 거냐는 질문에 김 할아버지는 ‘갈 데가 없다’는 말을 몇 번씩이나 반복했다. 김 할아버지에겐 갈 곳도 없지만 만날 사람도 없었다. 


“자녀는 하나 있었는데 죽어버렸어. 먼 친척 하나 있어도 뭐 가볼 일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고…. 내가 (이렇게) 산다는 걸 얘기도 안하고 살고 있습니다. 서로 모르고 살아요”. 


깔끔한 인상의 김 할아버지의 말소리는 조용조용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김 할아버지는 쪽방촌에서 같이 살갑게 명절을 보낼 이웃 사람도 없다고 했다. 


“요새 바퀴가 많이 나온대서 자꾸 닦아야 돼요.” 


분주히 방을 쓸던 할아버지의 손에 주민센터와 쪽방상담소 등에서 가져다준 쌀포대가 닿는다. 


“두 군데서 와서 쌀이랑, 송편을 줬어요. 참 고맙지”. 


맛있게 드셨느냐고 묻자 “치아가 나빠서…”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비좁은 쪽방에서 ‘추석 냄새’가 나는 건 오직 그 먹다 남은 송편 하나뿐이다. 김 할아버지에게 추석은 그저 ‘남들 떠들썩한 날’에 불과할 뿐이었다. 


김 할아버지는 그래도 추석이라고 기자가 다 찾아왔다며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쪽방 상담소나 주민센터가 아닌 곳에서 사람이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다면서 말이다. 


◈“가족 있지만…연락 안 하고 찾아오지도 않아” 


남들은 추석이라고 한우갈비세트다 뭐다 값비싼 선물을 주고받는다지만, 쪽방촌에 들어온 지 3개월도 채 안 됐다는 김모(66) 할아버지가 받은 추석선물은 쪽방상담소에서 주고 간 ‘모둠 전’이 전부이다. 


쪽방상담소에서 쪽방촌 독거노인들에게 전달한 '모둠 전' 선물. 쪽방촌 독거노인들에겐 값비싼 한우선물세트 부럽지 않은 소중한 반찬거리다.(사진=CBS노컷뉴스 전솜이 기자)


“추석이라고 복지과 같은 데서 이런 거 저런 거 다 해서 쌀 같은 것도 나눠주고, 커피도 막 들고 오고 그랬더라고요”. 


얼굴 맞대고 살갑게 모둠 전을 나눠먹을 가족은 없지만 김 할아버지에겐 더없이 소중한 반찬거리다. 


“밑에 막냇동생들 학비 대주려고 돈 벌다 결혼 안 했지. 친가족은 없고, 내 위로 형들은 다 돌아가셨고. 조카들이 여기서 이렇게 사는 거 집도 한 번 와보지를 않아요”.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김 할아버지의 목이 메기 시작했다. 작년 추석엔 의정부에 있는 어머니 산소도 다녀왔지만 올해는 못 갈 것 같다는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얼마 전 길거리에서 넘어져 크게 다쳐 뇌수술을 받은 김 할아버지는 “정신이 오락가락해 올해는 그마저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명절이지만 갈 곳도, 찾아오는 이도 없는 쪽방촌의 모습(사진=CBS노컷뉴스 전솜이 기자


또 다른 쪽방촌 주민 신모(75) 할아버지에겐 쓸쓸함만 더하는 추석보다 영광스러운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이 더 의미 있는 날이다. 


밥맛이 없어 담배와 커피만 달고 사신다는 신 할아버지는 그 시절 추억에 젖어 커피도 스위스 계열의 회사에서 나오는 믹스 커피만 마시는 ‘취향 있는 남자’다. 


“내가 해병대 출신 아이가. 이게 커피 중에 제일 나아. 미국 군인들 식사 때는 이것만 먹어”. 


좁다란 방에는 신 할아버지가 군대 시절을 추억할만한 사진으로 가득했다. 그 사진들 한가운데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우리 딸이야. 우리 딸은 미국에 있어. 5살에 즈그 엄마하고 나하고 이혼할 때 미국에 갔는데 40년 동안 안 와. 연락? 나도 안 하고 저도 안 해”. 


그 한 장의 사진은 오래전 딸 친구가 딸에게서 받았다며 전해줬단다. 할아버지는 사진 위에 혹여나 이름을 잊을까 딸 이름 석 자를 꾹꾹 눌러 써놨다. 


따님이 보고 싶지 않냐고 묻자 대신 ‘양딸’이라며 지난해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에서 만난 미 해군 여성 두 명의 사진을 보여준다. 


“연락은 안 해. 얘네는 군함 타고 대서양, 태평양 다 돌아다니는 애들인데 전파가 안 통하지”. 


신 할아버지는 사실 세상사에, 사람에 관심이 많다. 병원에 가면 꼭 그 병원 소식지를 가져와 모은 지도 벌써 몇 년째, 방 한쪽엔 병원 소식지만 한가득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신 할아버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명절이라고 고향을 찾은 적도, 고향에서 할아버지를 찾아온 적도 없다.


“조카 둘이 있는데 얘네도 안 찾아와. 내가 돈이 많으면 찾아올까? 갈 데도 없지만 심심하지도 않아. 추석에 역사책, 6·25전쟁 책이나 봐야지”. 


쪽방촌에 홀로 사는 노인들. 여느 해처럼 올해도 쓸쓸하고 외롭게 추석 연휴를 지내고 있었다.


이 기사 주소: http://www.nocutnews.co.kr/1101418



***

흔하디 흔한, 명절 기획 기사지만, 그래서 이걸 취재할 때 더 힘들었다. 그 사람들의 외로움을 그냥 흔한 명절 소재로 이용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취재 자체는 매우 수월했다. 쪽방촌에 계시는 노인들은 대부분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어서, 낯선 여자애가 취재한답시고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밀어도 기꺼이 좁은 방 한켠을 깨끗하게 치워서 앉을 수 있게 자리를 내어주는 분들이었다. 질문을 몇개 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나한테 더 질문을 많이 하셨다. 밥은 먹었냐고, 덥지 않냐고, 고생이 많다고.


취재가 끝난 뒤에, 인터뷰한 할아버지들께 드리려고 근처 편의점에서 비타민 음료를 한 박스씩 사서 다시 되돌아가 드리고 왔다. 할아버지들은 정말 고마워하시며 나에게 요구르트를 또 주시기도 하고, 불편한 다리로 꼬불꼬불 계단을 굳이 내려와 배웅해주시기도 했다. 나보고 또 찾아오라면서 배웅 인사를 해주셨지만, 나는 사실 그 이후로 그곳에 다시 찾아가 보진 못했다. 


그 사람들의 외로움과 가난을 흔한 클리셰로 내가 또다시 소비하게끔 가공하고 있다는 생각에 하루종일 스스로가 싫어졌다. 이걸 취재해서 그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외로움이 달래지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그들의 외로움을 명절의 북적임과 대비시키는 뻔하디 뻔한 명절 전용 기사로 만들어버린 것 뿐이었다. 정말 수월한 취재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