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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내키는대로 떠다니는 여행기

남프랑스에서 바다를 끼고 달리는 기차를 타다

[내키는대로 떠다니는 여행기 1편] 

이 글의 원 주소: https://brunch.co.kr/@ecrireici/1


남프랑스에서 바다를 끼고 달리는 기차를 타다


니스(Nice)에서 아비뇽(Avignon)까지, 지중해를 따라 이동하기






기차만큼이나 여행이 주는 설렘을 증폭시키는 교통 수단은 드물다.



비행기는 타는 과정이 비일상적이어서 티켓팅하는 순간부터 색다르고 신나기는 하지만, 막상 기체에 올라타고 나면 하늘만 내리 보여주니 가는 길 풍경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물론 구름이 쿠션처럼 둥실둥실 깔려있는 하늘 풍경은 평소에 볼 수 없는 광경이니 봐도 봐도 질리지 않긴 하다). 버스나 자동차는 평소에도 자주 타는 교통수단이라 흥미가 떨어지고, 자전거는 저질 체력 덕에 한강에서 1시간만 타도  온몸이 너덜거리는 나로선 도저히 도전할 용기가 도저히 생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기차는 다르다. 기차는 가는 길 내내 내가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매우 정직하게 큰 창으로 보여준다. 역무원이 돌아다니면서 표 검사를 하는 것도 아날로그적이고 좋다(같은 맥락에서 나는 표 검사를 할 때 바코드를 찍는 등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펀칭해주는 게 더 좋다). 마주 보고 앉는 자리 배치도 가끔은 민망하지만, 남들은 이동하는 이 시간 동안 뭘 하는지 보는 재미도 사실 쏠쏠하다. 주절주절 길게 썼지만 어쨌거나 핵심은, "기차는 비일상적인 기분을 느끼게 하면서도 가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여행에 최적화된 탈 것"이란 데 있다.


그리고 그 기차가 바다를 끼고 달리는 기차라면, 그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증폭된다.



2015년 4월 29일 아침 9시. 나는 남프랑스 코트다쥐르(Côte d'azur) 지방의 휴양 도시 니스(Nice)에서, 프로방스(Provence) 지방의 유서 깊은 도시 아비뇽(Avignon)으로 타는 TGV 기차를 탔다.

니스 중앙역에 우리가 탈 TGV 열차가 정차해있다.

기차를 타고 10분쯤 달렸을까, 기차는 다소 어수선한 니스 시내를 벗어나 창밖으로 바다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지중해다.


코트다쥐르 여행의 거점지 니스가 우리 뒤로 멀어진다.
니스의 지중해.
창에 대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부끄럽긴 했지만, 풍경이 너무 좋은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쪽빛(Azur) 색깔의 바다가 하염없이 펼쳐지고, 그 해변가를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기차가 달리는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바다가, 오른쪽으로는 야트막한 산들이 눈에 띈다. 니스 근교 관광을 책임지는 에즈(Eze)나 생폴(Saint Paul) 같은 마을들은, 다 저런 야트막한 산 위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우리는 일정상 앙티브(Antibes)나 영화제로 유명한 깐느(Cannes) 등은 못 갔는데, 이 기차를 타면 그런 아쉬움을 아주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다. 그 도시들을 모두 지나기 때문이다.


요트가 가득가득 세워져 있는 작은 선착장. 창밖으로 펼쳐지는 남프랑스의 풍경은 너무나 다채로워서 질릴 틈이 없다.

그리고 그 선착장을 지나면 또다시 아름다운 지중해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는 내 손이 창문에 비쳐서 같이 찍혔다.

바다만 보지 말고 하늘도 한번 봐달라는 건지, 구름 모양도 이국적이다.

저 해안도로를 끼고 드라이브를 하면 더 멋지겠지.

부끄럽지만, 난 사실 면허를 아직도 따지 못했다. 게으른 자의 숙명이다.

그렇지만 기차는 간혹 해안도로가 아니라 내륙 쪽으로 펼쳐진 방향으로 꺾기도 한다.

남프랑스 해변에 늘어져있는 바위는 붉은 색이다.

한 시간가량 바다를 한참 달리던 기차는 내륙 지방으로 접어든다.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를 지나서 조금만 더 가면 아비뇽에 도착한다.

키 작은 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는 아비뇽 TGV 역에 도착했다. 지은지 얼마 안 되는 게 확 티 나는 이 최신식의 기차역은 약간 공항 같은 느낌이 든다.

아비뇽 TGV 역은 아비뇽 시내와는 15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있다. 아비뇽 TGV 역과 아비뇽 중앙역(Avignon centre)을 오가는 셔틀이나 기차를 타고 아비뇽 중앙역으로 이동해야 진짜 아비뇽에 도착한다.


아비뇽 중앙역으로 가는 플랫폼으로 왔는데, 기차가 떠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도저히 표를 살 시간이 없었다. 막 기차로 올라타는 역무원에게 기차 안에서 표를 사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일단 타라고 했다. 부산스럽게 캐리어를 낑낑대며 올리고 나도 기차에 올라탄 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역무원 아저씨를 쳐다보니, 아저씨가 원래는 표값을 내야 하지만 너희는 워낙 급하게 탔으니 그냥 아비뇽에 온 선물로 공짜로 태워주겠다고 했다. 쿨하다 못해 추운 아저씨,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뜻밖의 선물을 타고 아비뇽 시내로 향했다.

부리나케 기차에 올라타니, 그제야 프로방스의 느낌을 팍팍 주는 평원이 눈에 들어온다.  

15분도 채 걸리지 않아 아비뇽 중앙역에 도착. 아비뇽 성문이 정면으로 보인다. 이 성문을 지나가면 이제 진짜 아비뇽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남프랑스 지중해 바다를 끼고 달리는 기차를 타고, 우리는 아비뇽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