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4일, 여행 닷새째.
외국 컴퓨터로 결제하려니 자꾸 나와 친구 체크카드가 먹히질 않았다. 알함브라(현지 발음은 알람브라에 가깝다) 예약을 못한 채 그라나다로 떠나게 되어서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 남은 방법은 당일 아침에 표 사기. 8시 반에 매표소가 문을 열고 사람들은 보통 한시간 전부터 줄을 선다길래 우리는 한시간 반 전에 가기로 했다. 같은 호스텔에 묵고 있던 호주 여자애와 브라질 남자애 한 명, 한국인 한 명과 나와 내 친구 이렇게 다섯명이 아침 5시 반에 기상해 6시 넘어 호스텔을 떠났다.
보통 사람들이 알함브라 궁전으로 올라가는 길은 그라나다 문 쪽인데, 우리는 호스텔에서 가까웠던 후문(?) 격인 길로 갔다. 경사가 좀 가파랐다. 아침 7시에 매표소 앞에 도착했고, 8시 반 매표소가 문을 열 때까지 노숙 아닌 노숙을 해야 했다. 1등으로 도착한 우리는 여유롭게 표를 살 수 있었다. 성수기 일요일, 당일 입장 표를 구하다니! 나랑 친구는 사실 그날 우리끼리 한국인의 이런 근성이라면 뭐든 못할 게 뭐있냐는 결론을 내렸다.
표를 사고 나서는 나스르 궁전 입장 시간이 9시라서 입장하자마자 곧장 궁전으로 먼저 향해야 했다. 궁전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정원이 예쁜듯 했으나 일단 나스르 궁전에 가야겠단 마음에 여유롭게 보지는 못했다.
나스르 궁전은 이슬람 문화의 정수로 불린단다. 화려하고도 섬세한 문양이 곳곳에 새겨져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모를 정도였다.
날이 매우 더웠다. 궁전은 또 왜그리 넓은지 발도 아팠다. 먼 옛날 여기에 살던 왕족은 노예들이 들고다니는 들것에 타서 부채 바람 맞으며 편하게 다녔겠거니 생각하니 그게 또 부럽기 시작했다.
궁전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은, 궁전에서 바라보는 그라나다였다.
알카사바에서 내려다 본 그라나다의 전경. 아직 해가 중천에 뜨지는 않은 오전 시간. 그래서인지 더 아련한 느낌이 들었던 건, 내 착각일까?
알카사바를 나와 헤네랄리페로 향했다. 헤네랄리페로 가는 길 곳곳에도 볼만한 건물들이 있지만, 역시 좀 지쳐서 패스.
헤네랄리페는 그라나다 왕의 여름 별궁이었다고 한다. 단정하게 깎인 키 작은 나무로 만들어진 길들이 재밌었다. 분수가 곳곳에 설치되어있어 그나마 시원했던 기억이 난다.
화려한 정원. 너무 정리가 잘 되어있다보니 약간 징그럽기도(난 이상한 데서 징그러움을 느끼는 것 같다) 했다.
꽃도 가득 피어있다.
알함브라를 나서 쭉 내려오니 그라나다 문에 도착했다.
그라나다 문에서부터 시작되는 고메레스 언덕에 줄지은 기념품샵을 간단히 구경하고, 점심으로 케밥을 사먹은 뒤 말라가로 떠났다. 말라가 여행 기록은 다음 편에서!
★ 이날 쓴 돈
알함브라 입장료 14.3유로/ 기념엽서 1유로/ 점심 5유로/ 시내버스 1.2유로/ 말라가 이동 버스 10.43유로/ 호스텔 13.5유로(10% 미리낸 것 합하면 15유로)/ 저녁 3.4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