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2013 퇴사기념 프랑스/베를린/북유럽3국/아이슬란드

[퇴사기념 유럽여행 기록 15] 코펜하겐(Copenhagen, København)

2013년 11월 11일. 열네번째 날(2)


스트뢰이어트 거리를 빠져나와 크리스티안 보르 궁전 쪽으로 걸어왔다. 뉘하운을 통과해 강변(?)을 걸으며 블랙다이아몬드까지 걸어갈 생각이었다.



길거리 어디를 보든 코펜하겐 특유의 고전동화같은 분위기가 가득하다. 




그러다 코펜하겐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거리를 우연찮게 지나게 됐다.



노란 벽 앞에 세워진 자전거의 모습이 인디 뮤지션의 앨범 자켓을 떠오르게 한다.




이 거리에서 우연찮게 나는 골동품 가게를 발견했는데, 여긴 완전 보물창고였다.



온갖 골동품 접시며 그릇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인상 좋은 주인아저씨는 좋은 인상의 백 배 정도로 더 친절했다.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묻고, 나는 오로라를 보는게 목적이라 북유럽에 왔는데 온 김에 평소에 꼭 오고싶었던 코펜하겐도 오게됐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 아저씨는 자기가 그린란드에서 오래 살았는데, 거기서 매일같이 오로라를 봤다며 나도 꼭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온갖 희망을 주셨다(나는 내가 아이슬란드에서 호스텔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선명하고 강한 오로라를 볼 수 있었던 게 이 아저씨 덕분이라고 무조건 생각한다). 


나는 유럽 그릇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줄 선물로 로얄코펜하겐 커피잔을 골랐다. 덴마크인 아니랄까봐 역시나 너무나 친절한 주인 아저씨는 이런저런 커피잔을 계속 꺼내줬지만, 그릇을 잘 모르는 나는 실수를 피하기 위해 로얄코펜하겐의 가장 대표적인 패턴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고른 작은 커피잔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3만원 돈. 그러나 공교롭게도 내게는 우리나라 돈으로 5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큰 액수의 지폐 한장과 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지폐 두 장이 있었다. 내가 5만원 짜리를 내밀자 이 친절한 주인아저씨는 너무 단위가 큰 돈이라며 다른 지폐가 없냐고 했고, 나는 내 지갑을 열어보이며 이것말고는 만 원정도에 해당하는 지폐 두 장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자 ....... 이 천사 아저씨는....... 그냥 그 지폐 두 장만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건 무조건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밖에 나가서 다른 가게에서 돈을 바꿔서 3만원짜리 만들어오겠다고 했는데 이 아저씨는 한사코 나를 말렸다. 동양 먼 나라에서 와서 엄마 선물을 사가겠다는데 자기가 이건 선물같은 느낌으로 싸게해줄테니 가져가라면서 말이다. 결국 나는 '덴마크의 국민소득이 우리나라보다 몇배가 더 많더라'는, 매우 물질적이면서도 천박한 생각을 한 뒤에야 이 아저씨의 선의를 고맙게 받아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내가 겪은 덴마크는 여러모로 친절하지 못해 안달난 사람들이 사는 나라다. 



그 아저씨네 골동품 가게에선 이런 앤틱 레고도 팔고 있었다. 내가 짐을 마음껏 늘릴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돈이 많았더라면 고민없이 샀을텐데.



기분이 좋아진 나는 스트뢰이에트 거리로 돌아와 로얄코펜하겐 플래그십스토어에 들어갔다. 나도 내 루트가 엉망진창인거 잘 안다. 원래 나는 내 기분대로 다닌다-_-



크리스마스 접시를 팔고 있었다. 동화같은 따뜻한 느낌, 정말 귀엽다.



로얄코펜하겐의 가장 대표적인 패턴. 내가 골동품점에서 산 패턴도 이거다.



로얄코펜하겐은 덴마크 왕족이 쓰기도 하고, 다른 나라 왕족에게 선물을 주기도 하는 도자기 브랜드란다. 그래서 이렇게 엄청난 가격대의 그릇도 많다. 




다시 시내로 나와 강변을 찾아가는 길.



코펜하겐에 온지 3일째, 뉘하운이 익숙해졌다. 우리 동네 같다.



개인적으로 코펜하겐이 가장 멋있을 때는 해가 질 때의 코펜하겐이 아닌가 싶다.




강변을 걷다 강변에 설치된 트램플린에서 노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날씨도 좋고 풍경도 멋있고 사람들도 친절해 기분이 좋았던 나는 엄마미소를 보며 노는 아이들을 쳐다보다가, 결국 얘네랑 같이 트램플린에서 뛰어놀았다. 코펜하겐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난 이 때를 꼽겠다. 뛰다가 주머니에서 소지품이 떨어진 걸 얘네들 엄마가 알려줘서 알 정도로 나는 트램플린에 몰두했다.




걷다보니 덴마크 왕립도서관인 블랙다이아몬드가 가가워지고 있었다.



유리에 반사되는 코펜하겐의 저녁하늘이 멋지다.




드디어 블랙다이아몬드 안에 입성. 나는 미술관, 박물관 다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도서관은 좋아한다. 책이 가득한 느낌, 활자와 텍스트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 나중에 코펜하겐에 갈 일이 있다면, 블랙다이아몬드 안에 꼭 들어와보길 권한다. 내가 지금까지 다닌 모든 도서관 중 가장 환상적이다.





갑자기 나도 여기서 공부하고싶어졌다. 대학원에 갈까? 나 되게 공부 잘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건 내가 멋진 도서관에 오면 흔히 빠지는 착각이다.




도서관 구경을 마친 뒤, 도서관 1층에 있는 카페에서 핫초코와 쿠키 하나를 시켰다. 이 핫초코, 진짜 말그대로 고체 초콜렛을 내 눈 앞에서 녹여줬다. 휘핑크림도 원하는 만큼 뿌려준다. 블랙다이아몬드는 도서관도 멋지지만 이 카페도 멋지다. 



만족스러운 코펜하겐 구경을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 코펜하겐은 어느 곳 하나, 어느 시간대 하나 안 멋진 때가 없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일기를 썼다. 이날 천사 아저씨에게서 산 코펜하겐 커피잔은 아직도 우리집 찬장에 잘 모셔져있다. 엄마 선물로 산 건데, 가끔 이 커피잔으로 커피를 마시는 건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