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2일. 열다섯번째 날
이날은 호스텔에서 만난 캐나다 남자애들 두명과 함께 코펜하겐에서 교외 전철인 에스토그(S-tog)를 타고 헬싱괴르를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한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헬싱괴르로 가는 기차 왕복표를 사는 것보다, 코펜하겐 시내에서 24시간 전구간 티켓(24 timer Alle zoner)을 사서 에스토그를 타고 가는게 훨씬 저렴하다. 나는 코펜하겐 기차역에서 24시간 티켓을 130 크로나를 주고 구입했다. 오...이 블로그에서 거의 처음으로 실질적인 정보가 등장하는 순간.
헬싱괴르로 가기 전에 코펜하겐 시내에 있는 칼스버그 박물관에 갔다. 나는 멍청하게도 칼스버그 박물관과 칼스버그 맥주 양조장을 헷갈렸다. '맥주를 아침부터 너무 마시면 안될텐데'하는 쓸데없는 걱정과 기대를 안고 갔는데, 칼스버그 박물관은 말 그대로 '박물관'이었다. 조각상과 그림이 있는....... 알고보니 칼스버그라는 이 사람이 직접 모은 미술공예품 콜렉션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이었다. "I'm not museum people"이라던 캐나다 애들한테 꼭 가고싶다고, 너희도 좋아할 거라고 했던 게 진심으로 미안하고 난처했다. 나도 뮤지엄 피플이 아니야 얘들아....ㅠㅠ
칼스버그 박물관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은, 1층에 있는 정원같은 곳. 정말 내 기억속에 아무런 감흥도 남기지 못한 이 박물관..
같이 간 일행 중 한명은 캐나다에서 연극 배우를 하는 애였다. 지인 중에 배우가 없어서 몹시 신기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헬싱괴르에 도착했더니 비가 엄청 쏟아졌는데, 사진에선 티가 안나는구나. 헬싱괴르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인 햄릿에 영감을 줬다는 햄릿 성이다. 기차역을 나서자마자 햄릿 성이 바로 보인다. 우리는 비를 맞으면서 멀찍이 보이는 햄릿성을 향해 걸었다. 이렇게 비에 쫄딱 맞는 여행도 젊을 때나 할 수 있는거라며 애써 낭만적인척하면서 말이다.
걸을 수록 점점 더 가까워지는 햄릿성, 그리고 점점 더 내리는 비.
헬싱괴르는 작고 예쁜 마을같아 보였다. 솔직히 난 햄릿 성보다는 이 마을을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얘네는 마을엔 별 관심없고 햄릿성에 몹시 가고싶어하는 눈치라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햄릿성이 가까워질수록 이 성이 좀 신기해보이긴 했다. 바다 위에 서있는 성 같은 느낌이랄까.
드디어 햄릿 성 도착. 옷이 쫄딱 젖었다.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했는지, 내부 관람 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의도치않게 속성으로 훑어봤다. 그 와중에 다리가 너무 아팠던 나는 의자를 발견하고 앉으려고 했는데, 유물이었나보다. 앉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좌절했으면 사진까지 찍어뒀는지.
속성 관람을 마치고나니 비가 어느정도 그쳐있었다. 물론 잠시 뒤에 다시 내리긴했지만.... 햄릿 성 앞에 바다가 펼쳐져있는데, 바다 너머 스웨덴 땅이 보인다. 헬싱보리라는 도시라고 했다. 바다 건너가 맨눈으로 바로 보이는 곳에 이웃나라가 위치한 이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햄릿 성은 잦은 공격을 당했다고 한다.
해변 옆에서 바라본 햄릿 성.
잔디에는 햄릿 성을 둘러싸고 있는 덴마크의 여러 도시(?)들이 표시되어있다. 이때부터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뭘 했는진 모르겠지만, 시간이 늦어 어느덧 어두워진 헬싱괴르. 결국은 마을을 둘러보지 못하고 우리는 다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코펜하겐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날씨 탓에 괜히 햄릿성이 더 쓸쓸해보이잖아.
안녕, 헬싱괴르. 시간이 있었더라면 유명한 아이스크림집도 가보고 예쁜 마을도 찬찬히 산책하고 싶었는데 뭔가 수박 겉핥기로만 보고 간 느낌이라 매우 아쉬웠다. 만약 다음에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햄릿 성은 겉에서만 아련하게 쳐다봐주고 마을을 돌아다녀봐야지.
코펜하겐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 9시. 우리는 시내에서 STEFF 핫도그를 사먹고 맥주를 좀 마시다 호스텔로 돌아갔다. 얘네 왜 굳이 여기까지와서 스테프핫도그를 찾았던거지? 캐나다에서 실컷 먹고 오지 않았니...? 하지만 맛있었으므로 원망할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