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3일~14일. 열여섯~열일곱번째 날
스톡홀름으로 떠나는 날, 아침일찍 일어나 코펜하겐 기차역으로 향했다. 하필 전날 자기 전에 핸드폰 충전기가 박살이 났는데, 다행히도 코펜하겐을 떠나기 전 B오빠의 도움으로 Tiger라는 우리나라의 다이소같은 곳에서 핸드폰 충전기를 살 수 있었다. 물 하나에 빵 하나를 샀을 뿐인데 8천원 가까이 나오는 이 미친 물가의 나라에서 핸드폰 충전기는 한 십만원쯤 하는 건 아닌지 덜덜 떨고 있었는데, 다행히 이만원 정도의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정말 큰 다행이야.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스트뢰에에 있는 빵집에서 커피랑 빵을 마셨다. 우리 맞은편 테이블에 덴마크 20대 남녀들이 거의 10명쯤 앉아있었는데, 정말 비쥬얼쇼크가 올 정도로 다들 잘생기고 예뻤다. 와, 얘네는 정말 유전자 자체가 다르다며 감탄하다보니 이 미남미녀의 나라를 떠나 또다른 미남미녀의 나라, 스웨덴으로 갈 시간이 됐다.
내가 지갑을 뒤적이는 사이 B오빠가 사진을 찍어줬는데, 뭔가 매우 여행자답게 나와서 만족스럽다. 어쨌거나, 안녕,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코펜하겐!
코펜하겐에서 스톡홀름까지는 생각보다 얼마 안 걸렸다. 5시간 30분 정도? 스웨덴 기차는 덴마크 기차보다는 쪼끔 덜했지만 그래도 매우 깔끔했다. 북유럽은 뭐든지 다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다.
참고로 코펜하겐에서 스톡홀름을 오갈 때는 덴마크철도청 DSB 사이트보다는 스웨덴 철도청 SJ 사이트에서 예매하는 게 조금이라도 더 저렴하다. 덴마크보다 스웨덴의 물가가 아주 쪼금 더 낮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스웨덴 철도청 사이트에선 한국 신용카드 결제가 참 힘드므로 카드 여러개를 준비해놓고 하나하나 인내심을 갖고 결제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메일로 이티켓이 즉각 날아오는 것도 아니니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가는 길엔 이런 호수인지 바다인지 모를 풍경이 계속 펼쳐졌다. 날씨가 좋고 그때 마침 듣고 있던 노래들도 다 좋았다. '코펜하겐'에서 '스톡홀름'으로 이동이라니, 이 낯설고 이국적인 지명들을 북유럽 느낌이 물씬 나는 풍경들을 지나치며 향하고 있다니. 내가 진짜로 '여행'을 하고 있다는 걸 확 실감한 순간이었다.
도착한 날엔 호스텔에 짐을 푸르고 근처 마트에서 파스타 소스를 사다가 저녁을 거하게 해먹고는 푹 잤다.
본격적인 스톡홀름 관광을 시작한 다음날. 내가 제일 먼저 간 곳은 스톡홀름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인 감라스탄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다.
감라스탄 거리를 헤매다보면 굳이 찾지 않아도 왕궁이 나온다. 스웨덴 왕 안녕하세요.
감라스탄의 구불구불한 길을 어찌어찌 빠져나오니,
...항구가 나온다. 알고보니 스톡홀름은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도시라, 곳곳에서 이런 항구를 볼 수 있다.
사진 박물관(fotografiska)에 가는 길.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알고보니 사진박물관에서 조금 더 가면 헬싱키나 노르웨이로 건너가는 페리를 탈 수 있는 페리 터미널이 있단다.
사진 박물관에는 뭔가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진이 많다. 아름다운 피사체를 담은 사진에만 익숙했던 내게, 예술로서의 사진은 사실 많이 낯설었다. 이 모델을 담은 사진이 그 중 유일하게 내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던 사진이었다.
사진 박물관 가장 윗층에는 카페도 있다. 비 오는 날의 스톡홀름 사진박물관, 뭔가 운치있다.
다시 감라스탄으로 돌아왔다. 오후 시간이 되니 상점에 하나 둘 노란 조명이 들어왔다. 코펜하겐보다도 더 위도가 높은 곳이어서 그런지 해도 더 빨리 지고 더 추웠다.
비도 오고 추워서 카페에 들어가서 망고 쥬스와 크로와상을 하나 시켰다. 별거 아닌것 같은데 저게 무려 만원 돈이 나왔다. 북유럽 물가는 한마디로 정신나갔다.
감라스탄 지하철 역으로 돌아가 스웨덴 중앙역이 있는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목적지는 H&M 본점.
비가 오고 추웠지만, 그래도 나름의 멋이 있다.
회토리예트 광장에 도착하니 마침 꽃 시장이 열려 있었다. 아직 코펜하겐의 여운에서 못 빠져나와 스톡홀름의 매력이 눈에 잘 보이지 않던 때, 이 꽃 시장이 나의 눈을 엄청나게 즐겁게해줬다. 사실 입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꽃에 별 관심이 없는 인간이었는데, 수습 기간을 거치면서 꽃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물론 꽃에 대해 유식해졌다는 건 절대 아니고, 꽃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느끼게 됐달까. 이렇게 말하니 매우 오글거리지만, 일에 치이고 스트레스에 치이다 꽃을 보니 어느정도 힐링이 된 경험이 있다. 어쨌든 나는 그 이후로 꽃을 매우 좋아하게 됐다.
H&M 본점에 도착했다. 매우 큰 규모지만,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다. 프랑스 교환학생 시절부터 H&M은 나의 소중한 의류 공급처다. 하지만 이 날 여기선 크게 사고싶은 옷이 없어서 퀼팅 장갑을 하나 사고 나왔다. 그마저도 스톡홀름 호스텔에 두고 왔다는 게 큰 함정이지만... 아직 생각해도 아깝다. 예뻤는데.
회토리예트 광장에서 감라스탄이 있는 곳까지 다시 걸어왔다. 아직 스톡홀름 지리와 구조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그냥 보이는대로 걸었다. 나는 원래 이렇게 직접 걷고 헤매면서 하루 다니면 금방 지리(?)가 입력이 되는 나름 인간 네비게이션의 뇌를 갖췄다. 이건 자랑이다. 감라스탄 길을 살짝 다시 걷다가 지하철을 타고 호스텔로 돌아가 라면을 하나 끓여먹었다.
스톡홀름의 첫날은 흐리고, 춥고, 어두웠지만 운치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