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6일. 열아홉번째 날
스웨덴에서의 세번째날. 인간적으로 날씨가 너무 좋았다. 숙소에서 나오자마자 심상치 않은 화창한 날씨가 느껴졌다. 겨울 북유럽 여행에서는 햇빛을 보기 힘들다는데, 난 코펜하겐에 이어서 스톡홀름에서까지 환상의 날씨를 경험했다.
쇠데르말름 역에서 내려 항구쪽으로 내려와봤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내 비가 왔는데, 이렇게 청명한 하늘이라니. 날씨는 춥고 쌀쌀했지만 나의 산책 욕구를 꺾을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항구 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로 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오늘 나름대로 짠 일정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겨울에 북유럽을 여행한다는 건 화창한 날씨를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란 얘기를 들었는데...... 걷는 내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임을 다시한번 실감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스톡홀름은 나 혼자 이런 풍경을 봐도 될지 미안할 정도로 아름답고 눈부셨다.
아무 것도 안하고 거의 두시간쯤 노래들으면서 걷고, 앉았다 쉬고, 다시 걷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다리를 건너가면 어제 그토록 찾아헤매던 현대미술관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산책을 더하지 않고 미술관에 가도 되는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래도 일단 다리를 건너가보기로 했다.
다리를 건너는 내내, 역시나 스톡홀름은 지나치게 아름답다.
파노라마 기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지요?
경치에 정신팔려 다리를 다 건너고 보니, 어느새 현대미술관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까지 다시 걸어올 자신이 없어서 그냥 온 김에 들어가기로 했다. 제발 내가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환상적인 날씨가 계속되길 간절히 빌면서말이다.
현대미술관스러운 조각상들이 보인다.
저 필기체 간판, 지나치게 멋스럽다. 스웨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감각적으로 만든다. 멋진 사람들이다.
현대미술관은 나름 재밌게 관람했다. 하지만 나는 다리가 아파서, 저런 쇼파가 나오면 일단 푹 쉬고 봤다.
한시간 쯤 보냈나, 환상적인 바깥 날씨가 자꾸 떠올라 더이상 미술관에 있기가 싫었다. 현대미술관은 좋은 곳이었지만, 그래도 겨울에선 몹시 만나기 힘든 스톡홀름의 화창한 날씨를 더 누리고 싶었다. 나는 기념품샵도 마다하고 초조해하며 다시 밖으로 나왔다. 혹시라도 다시 어두워졌을까 걱정했던 소심한 나를 비웃듯, 날씨는 여전히 환상적이다.
스톡홀름의 거리 곳곳이, 건물 여기저기가 햇빛을 받아 금색으로 빛난다.
도대체 스톡홀름은 어떤 곳이길래 세븐일레븐마저 분위기가 쩌는거지. 이번 여행에서 깨달은 사실은, 북유럽에선 의외로 세븐일레븐을 엄청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전날 유르고르덴 섬에 가면서 탔던 7번 트램을 또 만났다. 트램은 어디서나 귀여운 교통수단이다.
지하철을 타고 쇠데르말름 구역에 있는 Slussen 역에 내려 곤돌렌 전망대를 찾아갔다. Slussen역은 감라스탄에서 걸어갈 숭수 있는 거리니, 길눈이 밝은 사람은 감라스탄에서 천천히 걸어와도 좋을듯하다. Slussen역에 내리자마자 곤돌렌이 있는 건물이 보인다. 곤돌렌은 사실 레스토랑이라는데, 이 건물엔 스톡홀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같은 곳이 있다.
스톡홀름의 야경이 가까워져온다.
이미 이날 나는 스톡홀름의 멋진 모습을 남들의 몇배로 충분히 봤다고 생각했는데, 야경은 더 멋지다. 핸드폰 화질이라 그 감동이 전달되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곤돌렌에서 내려와 쇠데르말름에 있는 샵들을 돌아다녔다. 쇠데르말름에서 발견한 멋진 서점. 우리나라는 점점 동네 서점이 사라져가는데, 유럽에선 아직도 건재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동네의 작은 서점을, 작은 가게를, 그들 특유의 감성을 아끼고 존중하며 진심으로 즐기는 것이 느껴진다.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장 크고 뼈아프게 느낀 건,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멋있는 사고방식과 감각, 그리고 그를 뒷받침해 만들어진 엄청나게 멋진 제도를 갖춘 사회에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거다. 나도 프랑스에서 거주해보기도 했고, 나름 유럽 여행 경력이 꽤 되는데도 이런 부러움은 느껴본 적이 없다. 어느 나라나 우리나라와 비교가 되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나라도 나름 좋은 점이 많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북유럽은 달랐다. 북유럽은 '삶의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와 차이가 지나치게 극명하다. 사대주의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곳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너무나 천박하고 얕고 가벼웠다. 이곳 사람들이 부럽고, 왜 우리는 이런 환경을 갖추지 못했는지 서러울 정도였다.
저녁을 먹고 감라스탄에 있는 스탐펜이라는 재즈바에 갔다. 젊은이들은 그렇다치고, 중장년층은 물론 노년층까지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이 즐거웠다.
이날 찍은 사진은 여느 날과 다를바 없이 모두 내 핸드폰으로 찍었다. 내 스마트폰 LG옵티머스G는 화질 안좋기로 유명한데도, 이날 날씨가 워낙 좋아 황송한 퀄리티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모든 영광을 이날 날씨에게 돌립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