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2013 퇴사기념 프랑스/베를린/북유럽3국/아이슬란드

[퇴사기념 유럽여행 기록 21] 베르겐(Bergen)

2013년 11월 19일. 스물두번째 날



스톡홀름을 뒤로하고 노르웨이의 베르겐이라는 도시로 날아가는 날. 이날은 새벽 네시에 일어나 호스텔에서 짐을 챙겨 부랴부랴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으로 떠났다. 원래는 버스를 타고 떠날 생각이었지만, 전전날 지갑을 잃어버리고 난 뒤 뭔가 모든게 귀찮아진 나는 그냥 공항철도인 알란다 익스프레스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이 때부터 모든 큼직큼직한 이동은 비행기로 했는데, 대부분 저가항공인 노르웨이지안 항공(Norwegia Air)을 이용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저가항공임에도 불구 최저가의 함정에 쉽게 빠지는 여자라(...) 가격만 보고 티켓을 골랐더니 매우 아침 일찍이거나 심지어는 새벽 시간대(-_-) 비행기를 자주 타야만 했다. 싼 건 다 이유가 있다. 물론 노르웨이지안 항공 자체는 매우 만족스럽다. 비행기도 깨끗하고 무엇보다....



기내 와이파이가 된다!!!!!!!!!!!!!!!!!!!!!!!!!!! 하늘에 떠있는 상태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비행기라니!!!!! 우리나라의 모든 항공사도 당장 본받아야 한다. 이륙 싸인이 꺼지면 기장이 아예 "이제 너넨 무료 와이파이를 쓸 수 있음"이라고 방송한다.



베르겐은 노르웨이에서는 오슬로 다음으로 큰 도시다. 오슬로는 뭔가 흥미가 안 생겨 이번 여행에선 안 갔지만, 베르겐엔 예전부터 가고싶었다. 아름다운 도시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 무엇보다 베르겐에는 프랑스 교환학생시절 나의 절친한 친구였던 L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물론 자기 자신도 베르겐에서 나고 평생을 산 L은 베르겐과 노르웨이를 매우 사랑하는 친구다. 지금은 베르겐 대학에서 인류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L을 만나는 건 교환학생이었던 2010년 이후 3년만이라 몹시 떨렸다. 베르겐 공항에 도착해서 L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거의 3년만에 통화를 하는 거라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어찌나 반갑던지. L은 시내로 나를 마중나왔는데, 둘 다 서로 어쩜 이렇게 변한게 없냐며 놀라했다. 자기는 아직도 내가 여기에 온 게 믿기지 않는다며, 이렇게 만날 수 있을 줄은 몰랐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인연이라는 게 정말 묘하다는 생각이 아직도 든다.


베르겐에 있는 동안 고맙게도 L은 자신과 친구들이 사는 집에서 내가 머물 수 있게 해줬다. L의 방에 들어가서 그제서야 숨을 고르고 밖을 내다보니 눈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와 있었다. 



L은 3명의 친구와 함께 산다. L의 하우스메이트들은 모두 친절했고, 나한테 요리(ㅠㅠ)를 해주기까지 했다. 그 중 한명은 고양이를 두 마리 길렀는데, 정말 귀엽다. 베르겐에 있는 동안 나는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고양이의 귀여움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잘 때는 내 배 위에 올라와서 갸르릉거리며 편안해했다. 정말 귀엽다ㅠㅠㅠㅠㅠ



L과 묵은 수다를 떨고 나니 어느덧 저녁. 간단하게 밥을 챙겨먹은 우리는 항구 옆에 늘어진 목조건물로 유명한 브뤼겐으로 산책을 나섰다. L의 집에서 내다본 풍경은 경치가 참 좋았다.



베르겐 언덕(아마도 플뤼엔 산일거다..)에 위치한 L의 집에서 브뤼겐으로 가려면 이런 호수를 지나야 한다. 베르겐은 코펜하겐이나 스톡홀름에 비해 높은 위도에 위치한 도시다. 코펜하겐의 10배, 스톡홀름의 5배 정도로 추웠는데 L은 끄덕없었다. 역시 바이킹의 피가 흐르는 자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



이놈의 수전증만 아니었더라면 더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있었을텐데.





베르겐 시내에 도착. 브뤼겐은 이 시내 건너편에 있다.



사실 너무 깜깜해서 브뤼겐에 도착했는데도 목조건물들이 제대로 안보였다. L은 나를 1년 내내 크리스마스 물품만 파는 크리스마스 샵으로 데려갔다. 이 샵은 브뤼겐의 많은 목조건물 중 하나에 있다. 



일단 나는 소품, 장식품 구경을 좋아하는데다 크리스마스 코드는 사랑하는 수준이다. 그러니 내가 여기서 정신놓고 구경하다 결국 스노우볼을 사게 된건 예정된 일이었겠지.




다시 시내를 거슬러올라와 L의 집으로 돌아갔다. 



L의 집에서 내려다 본 베르겐. 저녁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물론 수전증을 지닌 자에게서 찍힌 사진에 그 느낌이 살아날리 만무하지만. 믹스룸에서 해방된 이날,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방해받지 않고 따뜻하게 푹 잠에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