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0일. 스물세번째 날(1)
항상 느즈막히 일어나던 나는 이날 이 집에서 가장 늦게 일어난 사람이었다. 다들 파트타임이나 학교에 가느라 일찍 일어나서 이미 밥을 먹고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원래 노르웨이 사람들은 부지런한가요...?
L의 하우스메이트들에게 민망함을 무릅쓰고 잠옷 차림으로 인사를 한 뒤 잠깐 뻘쭘해하다 아침을 먹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이국적인 북유럽의 겨울 풍경을 보며 빵에 버터를 발라 훈제고등어를 얹어먹으니 마치 나도 바이킹의 후예가 된 느낌이었다. 오늘은 본격적인 베르겐에서의 관광을 시작하는 날. L과 함께 일단 베르겐에서 가장 높은 산인 플뢰엔 산에 올라가기로 했다. 바이킹의 후예인 L은 자기네 집에서 플뢰엔 산으로 직접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다고 했지만, 저질 체력으로는 올림픽 금메달급인 나는 한사코 마다하며 케이블카를 타고 싶다고 했다.
오늘도 날씨가 추웠다. 스톡홀름이나 코펜하겐에서의 추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얼얼하게 춥다. 목도리, 장갑, 귀마개, 어그부츠에 레그워머까지 풀장착을 하고 나섰다. L이 사는 동네는 아기자기한 집들이 많은 동네다.
L이 사는 동네는 사실 플뢰엔 산 산자락(?)에 있는데, 살살 걸어내려오면 플뢰엔 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타는 곳이 나온다. 동네가 예뻐서 걸으면서도 계속 사진을 찍었다.
걷다가 이런 교회를 발견해서 들어갔는데, 알고보니 L의 부모님이 결혼을 하신 교회라고. 이곳에서 나고 자란 L은 동네 곳곳에 자기의 스토리가 있어서 좋아보였다. 유럽에서 짧게나마 살아보고, 또 여러차례 여행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이 사람들의 삶은 뭔가 우리의 삶에 비해 작위적이지 않다는 거다.
산자락에 저렇게 촘촘히 박혀있는 집들, 너무 예쁘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문을 안 연 가게도 많았다.
어느덧 항구가 보이는 시내 중심가에 도착. 플뢰엔 산으로 가는 케이블카는 항구 바로 옆에 있다.
저 하얀색 건물이 케이블카 타는 곳. 뭔가 동화같은 느낌이다. 알고보니 이 케이블카는 꽤 오랜 역사를 가진 베르겐의 명물같은 탈거리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플뢰엔 산에 올라가면 베르겐이 한 눈에 들어온다.
파노라마 사진을 찍어봤는데 어째서 파노라마는 일반 사진보다 어둡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누가 좀 알려주세요.
L의 부모님은 저 산 가까이에 있는 동네에 사신다고.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눈이다. 내가 베르겐에 도착하기 전날부터 눈이 엄청 쏟아졌다고 한다.
우리는 전망대(?)를 뒤로하고 산 안으로 더 들어가보기로 했다. L의 말에 따르면 조금 더 가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 있다고 한다. 솔직히 너무 추워서 아이스크림이 땡기지도 않았고 문도 안 열었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언제 내가 플뢰엔 산에 와보겠나 싶어 흔쾌히 따라나섰다.
눈이 쌓인 산길을 걷는 족족 동화속 눈덮인 숲속의 한 장면같은 풍경이다.
코펜하겐이나 헬싱괴르, 스톡홀름같은 곳은 모두 '도시'의 느낌이어서 북유럽의 대자연느낌은 사실 별로 없었는데 베르겐은 확실히 내가 생각한 '북유럽'의 모습에 가장 가까웠다. 눈이 쌓여있고 두 도시보다 훨씬 추워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역시 내 예상대로 가게 문은 닫혀있었다. 아이스크림을 그닥 먹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아쉽진 않았다. 벤치에 조각된 미키마우스랑 도날드덕이 귀엽다. 저런 깜찍한 상상은 누가 했을까.
다시 플뢰엔 케이블카로 천천히 내려가는 길. 왕복 한시간 좀 안 되게 걸었는데, 춥긴 무진장 추웠지만 공기가 정말 좋아 숨을 쉴 때마다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눈덮인 북유럽 조용한 동네의 숲길을 걷는 느낌도 좋다. 비틀즈도, 하루키도 모두 '노르웨이의 숲'을 얘기한 이유를 알 것같은 느낌적인 느낌.
숲 한복판에 트롤 나무조각이 있다. 트롤은 우리나라로치면 노르웨이의 도깨비같은 존재. 근데 귀엽고 친근한 느낌이라 트롤 기념품을 어디서나 판다. 뭔가 천하대장군, 지하대장군 생각이 드는 나무조각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려다 본 베르겐.
눈이 하도 쌓여 미끄러질까봐 다리에 힘을 너무 꽉 줬다. 이날 사실 저녁에 집에와서 다리가 좀 아팠더랬지.
케이블카를 타고 시내로 내려오는 길. 올라올땐 몰랐는데 내려갈 때 보니 생각보다 꽤 가파르다.
케이블카 옆으로 L의 동네가 보인다.
다시 내려와 목조건물이 늘어져있는 브뤼겐을 구경하러 가는 길. 건물들의 색감이 포근해서 좋았다.
베르겐에 있는 맥도날드는 건물이 정말 예쁘다. 맥도날드 주제에 역사와 전통이 있어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