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3일. 서른 여섯번째 날
전날 골든서클 투어를 해서 나의 하찮은 체력은 다시 너덜너덜해졌다. 눈을 뜨니 정오가 다 되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낮 동안엔 레이캬비크 시내에서 노닥거리다, 저녁엔 오로라를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레이캬비크 시내에는 쌀국수를 파는 집이 있는데(이름도 위치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장담하건데 레이캬비크에 가면 내가 말한 이 식당이 어딘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나는 또 쌀국수를 사 먹었다. 한겨울 아이슬란드가 (당연히) 너무 추워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진 몰라도 진짜 맛있다. 하여튼 쌀국수를 먹고 색색깔의 귀여운 집들을 지나 시내로 가는 길.
아예 바닷가쪽으로 걸어와봤다.
바다 건너편으로 이름 모를(=내가 모르는) 피요르드가 보인다.
평화로운 산책을 즐겼다.
이렇게보니 할그림스키르캬 교회가 또 색다르게 보인다.
다시 추워진 나는 그전부터 눈독들이던 한 음반가게에 용기를 내서 들어갔다.
정말 아늑하고도 분위기넘치는 공간이다. 주로 아이슬란드 가수들의 음반을 팔고 있다. 아무 CD나 골라서 맘씨좋아보이는 주인할아버지에게 이걸 들어보고 싶다고 하면,
이런 공간으로 날 이끌어서 듣게한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거의 두 시간을 여기서 보내며 온갖 음악을 다 들어봤다. 방명록을 보니 이효리와 이상순도 다녀간 곳이다. 이 곳 분위기에 완전 반해버린 나는 결국 한 아이슬란드 여성 인디아티스트의 CD 한 장을 우리나라 돈으로 3만원쯤 주고 사온다. 내 충동구매는 글로벌해.....후후후
평화롭고 좋은 날이다. 그림같이 몽글거리는 레이캬비크에서 한나절을 잉여롭게 노닥거린 후 호스텔로 돌아왔다.
저녁으로 파스타를 먹고 오로라 투어를 떠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호스텔 라운지에서 또 허세를 떨었다.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혼자서 잡지도 보고 오로라 예보도 찾아보고 노래도 듣고 오로라 예보도 찾아보고 커피도 마시고 오로라 예보도 찾아보며 시간을 때웠다.
이 비루한 블로그에서 딱히 유용하게 제공할 정보랄 건 없지만.... 레이캬비크에서의 오로라 투어 정보를 그래도 몇자 써보고자 한다. 수많은 여행사에서 오로라 투어 상품을 운영하는데 어떤 상품을 선택하면 좋을지다.
레이캬비크는 진짜 자잘한 여행사의 천국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있는 여행사는 아마도(확실하지않음) Iceland excursion과 Reykjavik excursion 일 것이다. 당연히 이 두 곳의 오로라 투어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린다. 겨울철 아이슬란드 관광객의 거의 99.999999% 는 오로라 예보를 매일같이 켜보며 예보가 좋은날 모조리 투어를 신청하는데, 그 중에서도 80% 이상은 이 두 곳에 몰리는 것 같다. (수치는 내맘대로 추측해봄ㅋ...ㅋ..ㅋ..)
나는 호스텔 스태프의 조언으로 이 두 곳이 아닌 소규모 여행사의 투어를 신청했다. 일단 그 두 여행사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버스가 여러대가 한 번에 출발하는데, 그러다보니 가장 대표적인 스팟 몇 군데 외에는 번거로워서 잘 가지 않는다고. 대신 소규모 여행사는 신청하는 사람들이 그 두 곳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으니, 대표스팟에서 오로라가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 의견을 모아서 진짜 구석탱이 같은곳으로도 가면서 오로라가 보일 확률을 높인다는 것. 그리고 오로라가 약한 날엔 아주 약한 인공 조명에도 오로라가 잘 안 보일 수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대표 스팟엔 시시각각 버스 헤드라이트가 나타나고 하다보니 오로라 감상에 더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스태프가 특정 여행사 팔이피플일 수도 있지만, 듣다보니 매우 그럴듯해 나는 소형 여행사를 선택했고(이름 기억안남....), 이는 결과적으로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하여튼 이 날 나는 투어를 함께 신청한 사람들과 함께 한 다섯 군데를 돌아다녔다. 투어는 우리나라 돈으로 한 6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고, 중간에 핫초코와 쿠키를 준다.
오로라가 보일만한 장소에 도착한 뒤 버스 불빛을 끄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 나는 도로와 눈밭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 이 미친 어두움 속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운전자가 몹시 신비롭게 느껴졌다.
날씨도 몹시 춥다. 안 그래도 추운 아이슬란드의 겨울인데, 심지어 해도 떨어진 밤이니 그냥 영하 몇도인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극도로 추웠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나는 히트텍을 포함해 옷 다섯겹을 껴입었고 양말도 세 겹을 신었다. 양 팔과 양 다리, 신발 속, 배와 등에는 덕지덕지 핫팩을 붙였다. 그래도 춥다. 핫팩이 곧바로 식어버린다. 정말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추우니, 굉장히 단단하게 채비를 해야한다. 사실 나는 이날 이거말고도 핫팩을 거의 스무개쯤 싸가져가서 나만큼이나 불쌍하게 바들거리는 외국인들에게 몇개를 나눠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첫 두 군데에선 아예 오로라가 보이지 않았는데, 오로라가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생각보다 실망스럽진 않았다. 별이 말도안되게 많았기 때문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별똥별도 봤는데, 한 열번째쯤 보다보니 그냥 별똥별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이런 별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아름다운 밤하늘이었다.
세 번째 간 곳에선 오로라가 약하게 보였는데, 생각보다 감흥이 덜했다. 그래도 오로라를 봤으니 됐다 싶었는데 의욕넘치는 가이드는 우리를 다른 곳으로 또 이끌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간 두 곳에서, 나는 엄청난 오로라를 봤다. 말 그대로 오로라가 내 눈앞에서 초록색, 빨간색으로 춤추듯이 출렁거렸는데 나는 '우와!!!!!!!!!!!!!' 이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우주의 일부분이라는 게 느껴지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내 폰카엔 잡히지 않는다........................................ (주의: 까만색 배경화면 아님. 오로라가 떠있는 밤하늘 사진임)
나를 불쌍하게 생각한 캐나다에서 온 저스틴이라는 남자가 나에게 자기 DSLR로 찍은 사진을 보내준다고 했다. 하지만 성격이 급한 나는 그 사진은 그 사진대로 받을테니, 니 DSLR 스크린을 좀 찍어도 되겠니 하며 구질구질하게나마 내 폰카에 오로라를 간접적으로 담아봤다. 그래도 아름다워.....
다음날 나는 저스틴에게 저스틴이 찍은 사진을 받았다. 매우 고마웠지만, 저스틴은 DSLR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쨌거나 thanks to 저스틴, 내 비루한 블로그에 어찌되었거나 오로라 사진을 올릴 수 있게되었다. 이건 세번째 스팟에서 본 오로라. 저 멀리에서 빛만 희미하다.
이건 네번째 스팟에서 본 초록색 오로라. 저 산 뒤에서 시작된 오로라가 우리가 떠날때쯤 점점 우리에게 가까워지는 신비한 체험을 했는데, 그때 저스틴은 너무 춥다고 이미 카메라를 다 꺼버리고 내가 준 핫팩에 자기의 손과 뺨을 의지하던 때라 얘도 그 순간을 놓쳤나보다. 아쉽지만 이거라도.
내 인생 버킷리스트(별거 없지만) 중 하나였던 오로라 보기를 이렇게 클리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