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4~5일. 여덟~아홉번째 날(1)
4일 아침 일찍 껑에서 파리로 왔다. 오랜만에 도착한 생라자르 역에서 감상에 빠질 여유도 없이 곧바로 파리 동역(Paris l'Est)으로 향했다. 베를린까지 가는 기차를 타기까지 시간이 한시간 정도 남았는데,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게뜨 샌드위치를 굳이 사먹었다. 독일에서도 바게뜨 샌드위치를 팔지만, 뭔가 그 맛이 프랑스만 못했다는 게 어렴풋이 기억이 나서다.
파리에서 베를린까지 가려면 만하임에서 한번 갈아타야했다. 모두 합해 8시간이 걸리는 여정. 오후 1시 10분 파리에서 떠나 베를린에는 그날 밤 9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으니, 하루를 꼬박 기차에서 보낸 셈이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도 허비하는 이상한 여정. 그래도 난 굳이 기차를 오래오래 타고 싶었다. 파리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다른 방법도 있었지만, 하루종일 기차만 타고싶은 이상한 강한 열망이 있었다. 기차 안에서 일기도 쓰고, 책도 보고, 노래도 들으면서 유럽여행 허세를 부려볼 생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특별한 이유없이 낮에 이렇게 장시간 기차를 타는 건 그닥 추천하지 않는다. 일단 일기쓰고 책보고 노래듣는 이런 거는 한두시간 하면 금방 지겨워진다. 설상가상 내 옆사람들이 모두 다 잠에 들어서 누구한테 말을 걸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파리에서 만하임에 갈 때까지는 날이 밝아 바깥을 보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만하임에서 베를린까지는 날이 어두워져 밖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매우매우 심심했던 나는 결국 좀비런 게임을 만렙을 찍어버렸다....
결국 난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했을 때, 삭신이 쑤셔서 그 어떤 감동도 받지를 못했다.
나는 베를린 중앙역 바로 옆에 위치한 마이닝거 호스텔에 묵었다. 시설, 서비스 모두 중간이었다. 밤에 도착하는 일정이라 한밤중에 괜히 위치 복잡한 호스텔을 찾고 싶지 않아 역 바로 옆 호스텔에 간건데, 다음에 베를린에 갈 일이 있으면 여기보단 미떼지구에 있는 호스텔에 갈 거다. 베를린 중앙역 근처엔 역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역 바로 옆이라 이동하기 편한건 있지만, 그 외엔 휑한 느낌이 들어서 여행자의 설렘을 반감시킨다.
다음날 나는 본격적인 베를린 관광을 시작했다. 우선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에 갔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U반을 타야 브란덴부르크문에 갈 수 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베를린 중앙역 안에서 한참을 헤맨 후에야 U반을 찾을 수 있었다.
반가워, U5반...널 찾느라 너무 고생했단다.
지하철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브란덴부르크 문이 보인다. 독일의 현대사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라 그런지, 다른 그 어떤 성당이나 유적을 볼 때보다도 '나 역시 역사의 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하는 자전거 탄 사람을 보니 유럽애들의 마인드가 참 부러웠다. 우리나라의 '문'은 더이상 '문' 역할을 하지 못한 박제된 관광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곳의 '문'은, 아직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사실 이게 전부다. 나는 문을 통과해 왼쪽으로 꺾어서 곧장 걸었다. 체크포인트 찰리를 찾아가는게 목적이었다. 나한텐 호스텔에서 얻어온 뭔가 신뢰가 덜 가는 관광지도 한 장이 전부였는데 위치 상 왼쪽으로 무작정 걷다보면 뭐가 나올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가는 길에, 생각지도 못한 곳을 만났다.
바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유대인 학살을 반성하고 다시는 인류에 이런 비극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관 모양의 조형물이 빽빽히 들어차있다. 이 사람키보다도 높은 조형물 사이사이를 걸어다니며 살짝 하늘을 보면 실제로 하늘이 너무나 좁게 보여 답답한 느낌이 든다. 나는 그 당시의 절망, 두려움 같은 것들을 짐작도 할 수 없지만 이 기괴한 조형물 사이를 걷다보면 자연히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이 곳 지하엔 작은 규모의 전시관이 따로 있다. 입장료는 무료다.
쓸데없이 감정이입을 너무 잘 하는 나는, 기념관에서 가족들이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주책이라고 할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곳에 다녀오면 나도 모르게 전인류의 평화를 기원하게 된다. 인류의 평화라는 게 말처럼 거창한 게 아니라, 소소한 일상을 영위하는 그 자체라는게 실감나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관람객이 서양인이다. 방명록을 보니 일본 사람 몇 명의 흔적이 보였을 뿐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한국사람들은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이 곳을 잘 안 온다는데, 개인적으로 많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서 조금 더 가면 포츠담 광장이 나온다. 포츠담 광장에는 베를린 장벽의 일부가 남아있다.
내가 갔을 때는 아직 크리스마스가 한 달도 넘게 남아있는 상황이었는데, 벌써 포츠담 광장에선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
난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좋다. 동화속에서나 볼법한 과자와 털모자, 장식품을 파는 풍경이 좋다. 나는 소세지를 간식으로 사먹었다.
포츠담 광장에서 체크포인트찰리로 가는 길에는 나치의 만행에 대해 알리는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과 함께 베를린 장벽의 일부가 펼쳐진다.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은 살짝 둘러보다 너무 우울해져서 도로 나왔다.
처음엔 이 높은 베를린 장벽이 모형인 줄 알았다. 너무나 당연한 거지만, 베를린 장벽이 정말 '장벽'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장벽으로 사람들이 사는 공간을 이등분하다니, 정말 바보같은 발상에 불과한데 그 당시엔 이게 공포를 조성했다. 이데올로기에 지나치게 매몰되었던 시절을 물체로 만나니, '멍청하게도 고작 해낸 생각이 장벽으로 막는건가, 인류의 집단 지성이라는 건 허상에 불과한가', 뭐 이런 영양가없는 생각이 둥둥 떠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