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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3 퇴사기념 프랑스/베를린/북유럽3국/아이슬란드

[퇴사기념 유럽여행 기록 8] 베를린(Berlin)

2013년 11월 5일. 아홉번째 날(2)


포츠담 광장에서 체크포인트찰리까지는 꽤 걸어야 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15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가는 길엔 이런 기념품 가게들이 있다.



걷다보면 어느 순간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느낌이 드는데 그러면 체크포인트찰리까지 다 왔다는 증거다. 체크포인트 찰리는 냉전 당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의 체크포인트 찰리는 철저히 관광객들에게 모든 코드를 맞춘 곳이다. 다. 참고로 저 사람들이랑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옛 동독 스탬프를 받고 싶어도 돈을 내야 한다. 예전엔 정치 이데올로기로 갈라진 곳이었다면, 지금은 그저 장사꾼 마인드로 가득한 관광지일 뿐이다.





고민 끝에 2유로를 내고 저 군인 둘 사이에서 사진을 찍었다. 동독 스탬프는 안 받았다. 받으려고 했는데, 앞 사람이 받은 걸 보니 지나치게 덕지덕지 여러 개를 찍어줘서 뭔가 장난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임팩트있는 도장 하나만 꾹 찍어주는 건줄 알았는데, 뭔가 실망스러웠다. 다리가 아파서 찰리체크포인트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서 아이스 초코를 시켜먹었다.



카페에 앉아서 체크포인트찰리를 오가는 관광객들을 마냥 구경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장면을 보게 됐다. 진짜 해군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온 거다. 진짜 군인과 가짜 군인이 함께 사진을 찍는 장면을 보니 뭔가 흥미로웠다. 그때문인지, 아이스초코가 맛있어서 그랬는진 몰라도 현대사에 대한 아무도 시키지않은 무거운 고민을 혼자 하느라 다소 가라앉아있던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힘을 얻은 나는 다시 걸었다. 딱히 목적지는 없었는데, 걷다보니 오버바움다리가 나왔다. 이걸 건너가면 이스트사이드갤러리가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리를 건넜다. 원래 이스트사이드갤러리는 다른 날 보려고했지만 난 원래 계획없이 여행을 다니므로 그냥 갔다.






이스트사이드갤러리가 시작됐다. 이스트사이드갤러리 그림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형제의 키스를 보기 위해 걸었다. 사실 난 이때까지만 해도 이스트사이드갤러리가 이렇게 긴 줄은 미처 몰랐다.



좀더 체력이 넘치는 날 다시 올걸 하는 후회를 할 때즘 형제의 키스가 나타났다. 막상 실제로 보니 당연하지만, 사진과 똑같아 뭔가 허무했다. 낙서까지 되어있어서 더 허무했다.



형제의 키스보다 더 좋았던 건 바로 이 그림이었다. 뭔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의 자유, 혼란, 환희 같은게 전달되는 것 같다.



이스트사이드갤러리의 길이에 지친 나는 잠시 강변에 앉아 쉬었다. 현대사를 가장 다이나믹하게 겪어낸 도시 중 하나인 베를린이지만, 내가 강변에 앉아 본 2013년의 베를린은 평화로웠다.




잠시 앉아서 다시 힘을 얻은 나는 이왕 다리아픈거, 알렉산더광장까지 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피곤할 때, 가끔 이렇게 나를 시험하는 짓을 하곤 한다. 이스트사이드갤러리에서 가장 가까운 역까지 걸어가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나의 빡센 계획을 취소할까 생각했는데 묘한 오기가 들어서 결국 알렉산더광장까지 왔다.



어느덧 저녁이 된 베를린. 만국시계에서 서울을 찾아냈다.



알렉산더 광장은 굉장히 번화한 곳이고, 내가 좋아하는 트람드 끊임없이 지나다니고 있었지만 다리가 너무 아팠다. 다른 날 더 천천히 보기로 하고, 일단 숙소로 들어갔다. 엄청나게 걸었던 이날, 숙소로 들어가서 샤워하자마자 바로 뻗어버렸다. 뚜벅이 여행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결국 체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