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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속 택배기사들 "기피 일순위는 車없는 APT"(2013-08-14)

폭염속 택배기사들 "기피 일순위는 車없는 APT"

땡볕 수레 끌고 이 동 저 동 전전…쿨비즈룩은 '딴 나라 얘기'


2013-08-14 06:00

CBS노컷뉴스 전솜이 기자


"요새는 옷을 두 벌씩 갖고 다녀요. 오전에 땀 흘리고 오후에 또 땀 흘리니까…”. 


택배 기사들은 여름이 두렵다. 35도 안팎을 넘나드는 올 여름은 더더욱 두렵다. 


푹푹 찌는 열기 속에서 숨가쁜 일과를 나면 택배 기사들의 작업복은 그야말로 땀에 절어 너덜너덜해진 상태. 


"원래 여름과 겨울은 힘들다"지만, 끝이 보이질 않는 올해 폭염은 그저 한숨만 나오게 한다. 


서울 서초구의 한 '차 없는 아파트' 단지의 모습. 제한 높이가 2.3m다.(CBS노컷뉴스 전솜이 기자)


◈ '차 없는 아파트'…여름철 택배 기사는 곤욕 


"차 없는 아파트요? 어마어마하게 힘들죠. 쓰러질 것 같아요". 


택배 기사들의 기피 일순위는 단연 '차없는 아파트'다. 아파트 지상을 공원처럼 꾸미고 지상 주차장을 없애 말 그대로 지상에 차가 없게 조성한 아파트 단지들이다. 


최근 신축된 아파트의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차 없는 아파트'에서 차량은 지하로만 다녀야 한다. 문제는 지하 출입 제한 높이보다 택배 차량 높이가 더 높은 경우가 많아, 택배 기사들 입장에선 아예 출입 자체를 할 수 없다는 것. 


보통 '차 없는 아파트'에서 제한하는 차량 높이는 2.3m인 경우가 많은데, 택배 차량의 높이가 2.3m에 달하다보니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수가 없다. 


가까스로 지하로 들어갈 수 있는 높이라 해도 '지하주차장 내 형광등이 깨질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아파트 단지에서 아예 택배 차량 출입을 제한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경우 꼼짝없이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운 뒤, 수레에 물품을 싣고 아파트와 차량을 여러 차례 오가며 물품을 배달하는 방법 외엔 달리 없다. 


택배 기사 김대기(41) 씨는 "차 없는 거리, 아파트 한다고 택배 차량을 금지시키니 그 아파트 단지를 그냥 걸어서 다닌다"며 "수레 끌고 두 개 동 정도 (배달)하고 또 차로 와서 다시 이동하고, 이런 식으로 하니까 정상적으로 배달을 못 한다"고 했다. 


그나마 동과 동 사이가 가까우면 다행. 아파트 동 사이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기라도 하면 그만큼 햇빛과 더위에 노출되는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차 없는 아파트'는 무더위에 생고생하는 택배 기사들에게 때로는 수치심을 안겨준다. 


김 씨는 "더운 것도 더운 거지만, 공원처럼 해놔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데 그 옆에서 수레를 끌고 다니면 솔직히 자존심도 엄청 상한다"고 털어놨다. 


◈ "반바지 못 입어"…계단 없는 저층 건물도 '고역' 


요새 사무실에선 반바지에 시원한 소재로 된 셔츠를 입는 '쿨비즈룩'이 유행이라지만, 택배 기사들에겐 그저 '딴 나라 얘기'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고객에게 불쾌감을 유발하면 안 되기에, 업체들이 반바지 착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종일 무더위에 고스란히 노출돼있는 택배 기사들의 작업 환경을 살펴보면 택배 기사야말로 '쿨비즈룩'이 절실한 형편이다. 


김 씨는 "자기 차에 물건 싣는 작업을 하러 오전 7시까지 터미널에 나오는데, 이 작업만 기본적으로 4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물건을 노상에 깔아놓은 뒤, 서 있기만 하는 게 아니라 물건이 오는 걸 받고 옆으로 주면서 움직이는데 천막 같은 게 있다고 해도 여름엔 힘들다"는 것. 


택배 기사 이상용(42) 씨도 "물품 분류 작업하는 곳은 외부에 노출돼있으니 에어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 해야 선풍기 정도인데 더울 수밖에 없다"며 "그냥 걸어 다녀도 땀을 흘리는데 이건 외부에 있다 보니…"라며 답답해했다. 


오전 내내 땡볕에서 분류 작업을 끝내고 나면, 오후부터는 곧바로 물건 배달에 나서야 한다. 


하루 200개 물량을 맞추려면 2분에 하나씩 배달해야 하는데, 뜨거운 날씨에 불쾌지수까지 높은 여름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은 양반. 엘리베이터가 없는 저층 건물은 택배 기사들에겐 그야말로 고역 그 자체다.


여름철엔 사람들이 물을 많이 마시다 보니 물 배달도 늘어나는데, 이 또한 택배 기사들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생수통을 들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을 누비는 건 베테랑 택배 기사에게도 힘든 일이라 헉헉대기 마련이다. 


이 씨는 "물은 무겁고 들기도 불편하고, 여름엔 물 때문에 정말 힘들다"며 "5층까지 2ℓ짜리 물통을 4개 정도 들면 정말 숨이 탁탁 막힌다"고 했다. 


"얼음물을 가지고 다녀도 금세 녹고 미지근해지는 날씨"라며 힘든 기색을 보이던 것도 잠시. 


그는 이내 "요새는 택배 업계도 인력난이 심해 아침부터 늦게까지 일해야 한다"며 부랴부랴 다음 배달지로 떠났다.


이 기사 주소: http://www.nocutnews.co.kr/1083751




<택배 기사 잡는 불볕더위…기피 일 순위는 '차 없는 아파트'> 


▶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택배 기사들도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차 없는 아파트'가 늘면서 고생도 더 늘어난 속사정을 전솜이 기자가 직접 들어봤습니다. 


= 연일 퍼부어대는 폭염에 미처 땀방울이 식을 새조차 없어서 택배 기사들은 요즘 옷을 두 벌씩 갖고 다닙니다. 


특히 지상에선 차가 다니지 못하고 지하로만 다니게 조성한 '차 없는 아파트'는 요즘 택배 기사들에게 기피 일 순위입니다. 


지하 출입로 높이 제한에 택배 차량 높이가 걸려서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차를 멀찍이 세워두고 물건을 수레에 실어 땡볕 아래 이 동 저 동 배달을 다녀야 하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에 차를 대 놓고 걸어 다니거든요, 수레 끌고. 가기가 어마어마하게 힘든 거죠. 쓰러질 거 같아요" 


오전 내내 선풍기 한 대 겨우 돌아가는 야외에서 물건 분류 작업을 마치고 나면 곧바로 2분에 하나씩 배달 작업에 들어갑니다. 


사람들이 물을 많이 마시는 날씨. 


늘어나는 생수 택배는 무겁기만 하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까지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새 온몸이 땀으로 흥건합니다. 


"여름에 사람들이 물을 많이 먹으니까 5층까지 4개 정도 들면 정말 숨이 탁탁 막혀요" 


옷이라도 시원하게 입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택배 기사들은 요즘 대세라는 '쿨비즈 룩'도 입기 어렵습니다. 


"회사에서는 반바지를 못 입게 하죠. 더운데 어쩔 수 없잖아요, 회사가 그걸 원하니까. 택배 기사도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불볕더위. 


택배 기사들의 고생도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

이 기사의 반응은 엄청 폭발적이었는데, 포털 사이트에는 기사에 등장한 아파트 사람들을 욕하는 댓글이 수도없이 달렸다. 몇달 후 미디어다음이 채용공고를 낼 때 이 기사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이런 소외된 사람들의 내용도 전달한다는 식의 문구를 쓴 걸 본 적이 있다. 취재력이 딸리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어쨌거나 기자로서 뿌듯했던 기사 중 하나다. 사실 기사가 나간 다음에 곧바로 여기저기서 사진에 등장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인데 그정도로 심하지 않다며, 포털에 욕하는 댓글을 너무 놀랐다는 연락을 꽤 많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