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6일. 여행 둘째날 (1)
오타루 숙소로 bnb를 구한 것은 정말 매우 큰 실수였다. 여기 주인은 위생이라는 걸 모르는 인간인가보다. 너무나 찜찜한 기분으로 잠을 자는둥 마는둥하며 둘째날을 맞았다. 일단 씻고나서 나머지 가족들이 씻을 동안, 아침 먹기 전 나는 아빠와 동네 산책을 떠났다.
우리가 묵었던 곳은 정확히 말하면 오타루 옆동네(?)인데, 작고 조용한 어촌 동네다.
그러다 이렇게 유치원 갈 준비를 하는 아가들을 만남.
일본 어린이들은 저렇게 모자를 쓰나보다. 귀여움 폭발ㅠㅠ 짱구는 못말려 만화에서도 애들이 모자를 쓰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하여튼 유치원으로 떠나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훈훈해졌다.
다시 컴컴한 우리의 숙소 bnb로 돌아옴. kaz라는 이름의 괘씸한 인간이 운영하는 이 bnb는 침구도 엉망(더럽고 냄새남), 먼지 굴러다님, 수건도 뭔가 찜찜, 화장실도 찜찜, 청소상태 제로..........................
창밖 풍경. 분명 에어비앤비에선 바다가 보인다고 했다. 호갱은 글로벌하게 사기를 당합니다.
이 집의 엉망인 위생상태와 주인장의 양심을 가족 모두가 골고루 까면서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식사는 전날 로손 편의점에서 사온 것들이다. 저 컵라면 우동도 맛있고 오믈렛도 맛있었는데... 진짜 맛있는건 로손에서 파는 롤케익이다. 푸드 얼리어답터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귀차니스트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그 유명한 도지마롤을 먹어보지 못해서 맛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진짜 맛있다. 전날 집에서 떠나오면서 챙겨왔던 고구마도 남았길래 같이 먹었다.
거의 재앙 수준이었던 숙소를 탈출하고 오타루 시내에 도착했다. 오타루는 일본 개항기 시절 금융기관들이 모여있던 동네라 한다. 그래서 아직도 길거리엔 근대식의 옛 은행 건물들이 남아있다.
우리도 남들 다 가는 오르골당에 갔다.
은은한 오르골 소리가 가득한 오르골당. 엄청나게 많은 오르골을 팔고 있다.
아빠가 특히 즐거워하던 스시 모양의 오르골.
인형같겠지만 사실 이것도 오르골.
작고 귀엽고 아기자기한 것이라면 뭐든지 영혼을 불태우는 일본인들........
내가 한참 봤던 오르골. 제일 귀여웠다.
서양문화를 동경하는 일본인들의 취향이 반영된 오르골... 그러나 쵸큼 촌스럽당.
그나저나 오르골당에서도 내 수전증은 여전하구나.
디즈니 캐릭터들이 그려진 오르골 보석함. 엄마가 하나 사줄까 물어봤지만 나는 됐다고 ㅎ_ㅎ 이런 표정을 지었지만... 아마 니모가 그려진게 있었더라면 사달라고 했겠지.
그러나 진짜는 2층에 있다.
1층에서 팔고 있는 오르골이 관광객을 겨냥한 조악한 기념품 수준이라면, 여기는 진짜 제대로 된 오르골을 팔고 있는데... 오르골이 이렇게 비쌀 줄은 전혀 몰랐다. 사실 인생 내내 오르골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음. (...)
아직 이정도 가격에 놀라면 안 된다.
왜냐면 이런 가격도 있으니까.
오르골 무식자의 오르골당 구경이 끝났다. 저 아저씨 굉장히 즐거워보이셔서 나도 다 기분이 다 좋네요.
그 옆에 있는 가게에 들어가봤더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애들이 가득하다. 나는 토토로랑 포뇨가 제일 좋다. 그 옆에서 사진 찍는 꼬마도 이 캐릭터들 중 하나같다.
또다른 오르골 가게에 들어갔더니, 저렇게 오르간인척하는 오르골이 있다. 오르간이랑 오르골은 근데 같은 원리인건가? 왜 둘다 '오르' 로 시작하지.......... 오르골 무식자는 오르간 무식자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오타루에는 오르골 가게가 진짜 많다.
유리 공방도 많다. 유리 공예가 유명한가보다.
귀여워.
수많은 유리공방과 오르골가게 밖에서는, 같이 온 성별이 여자인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죽이는 불쌍한 남성들이 있다. 아기자기 귀염귀염 반짝반짝한 무언가로 뒤덮인 이 공간에서 이들은 갈길을 잃었겠지.....
우리집 남성 두명도 별반 다를바가 없이 길거리를 영혼없이 헤매고 있었다.
유치원생만 모자를 쓰는줄 알았더니 초등학생들도 쓰고 있다. 일본에서는 노란 모자가 곧 '와타시는 어린이!!!!'라는 표시인가보다.
배가 너무 고파서 오타루 운하 옆에 있는 어떤 푸드코트인줄 알았으나 그냥 음식점 몇곳을 모아둔 그런 곳에 갔다. 오늘의 점심은 수프카레. 수프카레는 카레를 국처럼 끓여서 주는건데, 이 동네가 겨울에 워낙 추워서 카레를 국처럼 해먹었다고 한다.
음식을 기다리는 순간이 젤 설렌다.
수프카레 등장. 나는 함박수프카레를 시켰다. 맛있었다.
배도 불렀겠다 이제 밖으로 나와 어제 밤에 봤던 오타루 운하로 다시 가본다.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밤과는 또다른 느낌을 주는 낮의 오타루 운하.
식곤증인지 뭔지 나는 오타루운하에서부터 미친듯이 졸려오기 시작했다. 혼수상태로 걸어다니고 있었음.
오타루 운하 건너편엔 알고보니 이렇게 작고 일본스러운 골목이 있었다. 우리 모두 여기와서 점심을 먹을 걸 후회했다.
크레페가 낯선 엄빠의 모습.
오타루를 떠나기 전, 수많은 유리공방을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다시 공방 거리로 돌아왔다. 인력거도 다닌다.
그러다가 홋카이도 명물이라는 노란 옥수수와 노란 메론을 사먹었다. 메론 저거 두 줄 주는데 300엔이고, 옥수수는 250엔이었나... 돈쓰러온 관광객 맞으니 기꺼이 호갱이 되겠다는 자세로 사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싸다. 그리고 옥수수는 서걱서걱해서 나 빼고 가족 모두 별로 맘에들어하지 않았다. 달기는 매우 달다. 주전부리와 함께 우리는 오타루를 떠나 하코다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