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8일. 여행 넷째날
게으른 자의 여행기는 장장 5개월이 지나서야 다시 이어진다. 여행을 다녀온지는 무려 반년^^이 지났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처럼 게으르면서 동시에 끝내지 못한 일에 대해 쿨하지 못한 사람은 블로그를 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빨리빨리 끝낼 성격도 아니면서, 그 와중에 또 '저 여행기는 또 언제 끝내지....'하는 생각이 정말 뜬금없는 순간에 떠올라 마음이 괜히 찜찜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블로그가 정기적으로 읽어주는 독자가 많냐, 그러면 또 그것도 아니고. 하여튼 결론은 게으른 사람은 애초에 블로그를 시작도 말자는 것.
사설이 너무 길었다. 어쩄든 여행기를 이어가봐야지. 우리는 삿포로에 도착한 이튿날, 비에이와 후라노를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한 3시간쯤 걸렸는데 차에 앉아 있는 허리가 굉장히 아프다. 물론 나는 운전을 안 했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난 면허가 없다. 갑자기 면허가 없다는 문장을 치는데 쓸데없는 자신감이 솟아오른다.
어쨌든 떠나기 전 너무나 아늑한 kaori의 비앤비에서 아침을 먹었다. 모두 숙소 근처 로손 편의점에서 공수해왔는데 한국인으로서 일본은 용서할 수 없지만 일본 편의점은 용서합니다. 넘나 모든 것이 맛있는 것....
비에이로 떠나는 차 안에서는 전날 돈키호테에서 공수한 과자를 까먹었다. 포키는 혹시 저 말차맛 과자가 맛이 없을 때를 대비한 보험용 과자였는데, 다행히 저 말차 과자는 보험 따위 필요없는 굉장히 오이시이한 맛을 선사해줬다. 그렇다고 포키를 안 먹은 건 아니고 포키 역시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애초에 보험같은 건 나한테 의미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가는 길에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바로 우리 차가 경찰에 잡힌 것. -_-
사실 지금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떤 경찰이 우리 차를 보고 서라고 하는 것 같았다고 엄마가 얘기했는데 나와 아빠는 우리는 아무런 잘못한 게 없다고 그냥 무시하고 갔다. 그런데 경찰차가 끝까지 따라오길래 그제서야 아 우리를 부르는거구나 하고 멈춰섰다. 지금 생각하니 남의 나라에서 이게 무슨 똥베짱인지...ㅎ..... 심지어 아빠는 어쩌다보니 그날만! 숙소에다 여권이며 국제면허증을 두고 왔다. 이렇게 스웨덴 경찰서에(=지갑 분실 사건) 이어 일본 경찰서도 체험하는 건가 싶었다. 어쨌거나 경찰이 우리보고 뭐라고 했는데 와타시다치와 강코쿠진데스...... 뭐라고 하는 건 지 알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나의 두뇌 어딘가에 일드로 쌓아올린 야매 일본어 실력이 있긴 있었나보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고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만 나는 경찰과 뭔가 대화를 했고, 나는 경찰에게 우리에게 면허증이 없지만 렌터카 업체에서 작성한 서류를 보여주며 우리가 불법으로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며, 난 일본어를 잘 못 해서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진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주의하겠다는 말을 전했고, 그 말이 심지어 통했다. 나니?_?_?_?
어쨌든 쫄아있던 우리는 경찰로부터 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주의를 듣고 무사히 풀려났다. 정말 다행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는지는 몹시 의문이다. 그 핵심 내용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역시 일드로 배우는 일본어는 한계가 있나 봅니다........우리는 대체 왜 잡혔던 것일까... 그것이 알고싶다....
가벼운 마음을 창 밖 풍경을 보니 홋카이도의 조용한 동네가 보인다. 하늘이 매우 맑았다. 이 날 거의 유일하게 맑은 하늘을 본 순간이 아닌건가 싶음. 네 맞아요 여기가 눈물을 흘릴 포인트입니다.
일단 유명하다는 수프 카레 집을 들렀다.
내부는 요렇게 생겼음.
나는 카레 우동을 시키고 가족들도 이것 저것 시켰는데...사실 메뉴가 사진을 봐도 잘 모르겠고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블로그 여행기는 부지런한 사람이 쓰는 겁니다.
밥을 먹고 켄과 메리의 나무를 보러 갔다. 뭐 이런 저런 CF에 많이 나와서 유명해진 나무라 하는데,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저 나무가 끝임. 저 나무가 바로 켄과 메리의 나무다.
이것도 무슨 유명한 나무임. 비에이는 이런 유명한 나무들을 보러 다니는 곳인가 보다.........
사실 나는 나무에는 별 감흥이 없고(대체 왜 유명한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런 일본스러운 장면들이 더 인상깊었다.
산이 가득한 나라에서 온 나는 이런 평야가 늘 낯설다. 프랑스에서 살 때도 산이 너무 없고 평야가 가득했는데, 그게 나의 향수병을 불러일으키는 요인 중 하나였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에 귀의하는 뜻을 가진 사람같다.
뭐 차를 타고 이곳 저곳 다녔는데, 이런 곳도 갔다. 저 얼굴이 귀여워서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쟤한테 먹여주는 기념 사진도 찍었다. 물론 당연히 나는 여기가 어딘지 전혀 기억에 남아있질 않다. 뭔가 다들 유용한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해서 이 미천한 블로그까지 오셨겠지만 정말 죄송해요. 이 블로그는 정보의 불모지, 온라인 저장공간 낭비의 생생한 현장 그 자체입니다.
차로 조금 더 달려 아오이케라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사실 가기 전 중간에 홋카이도 사진을 너무나 아름답게 찍어 홋카이도, 그 중에서도 특히 비에이와 후라노 지역을 유명하게 만들었다는 한 사진작가의 전시관도 들렀는데 아무런 사진이 남아있질 않다. 이 블로그는 정보의 불모지이며,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자는 '허술함'이라는 개념이 인간화된, 뭐 그런 사람입니다......
어쨌든 아오이케 도착. 아오이케는 푸른 호수라는 뜻의 일본어다. 후후후후 아는척 좀 해봐야지. 이런 길을 따라가면 아주 신기한 푸른 빛의 호수가 나온다.
이렇게. 색깔이 정말 특이한데, 그 물에 심어져있는(?) 하얀 색의 죽어있는 나무도 몹시 신기하다. 좋은 의미로 말하는 건데, 정말로 이상한 비주얼이다.
몹시 신기하니 파노라마로 한번 또 찍었다.
이 모습을 보겠다고 바글바글 모여있는 사람들. 귀요웡
이제 후라노로 간다. 와 진짜 이날 차 겁나 탔던 것 같다. 한참 지루해질 즈음.........................길에서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
여우다!!!!!!!!!!!!!!!!!!!!!
이 동네 너무나 자연친화적이라 도로에서도 막 여우가 다닌다. 살면서 난 여우를 이날 처음 본 것 같다. 근데 이 중 한 마리가 다리를 절뚝거렸다 ㅠㅠ 차에 치인건가 싶어서 정말 마음이 아프고 얘네를 뒤로하고 달리면서도 한참이나 생각이 났다. 아프지마 여우야 ㅠㅠ 라고 저질 체력자가 남 걱정을 해봅니다.....
후라노 도착! 사실 비에이는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넓은 평원과 고요하면서도 이국적인 일본의 시골 풍경을 만끽하는 곳이라면, 후라노는 갈 곳이 딱 정해져있다. 팜 도미타 라는 꽃 농장이다. 라벤더 밭으로 유명한데, 우리가 갔을 땐 라벤더보다는 다른 꽃이 훨씬 더 많았다.
뭔가 굉장히 일본사람들이 좋아할 것만 같은 색감의 꽃들이 줄맞춰서 심어져 있다.
얘네들은 이제 막 심어졌나보다. 귀여워
날씨가 맑았으면 훨씬 더 아름다웠을 거 같다. 어쨌거나 방대한 꽃밭이 펼쳐져있다.
그래도 난 라벤더가 젤 조아.
우리가 갔을 때는 라벤더 제철(?)은 아닌가보다. 라벤더가 많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소규모의 온실에서 라벤더를 따로 키우고 있었다. 원래 나는 초상권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라 저렇게 나온 사람들의 얼굴도 하나하나 다 모자이크 해주는 섬세한 그런 사람인데, 지금은 좀 귀찮아서 패스한다(....)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와 진짜 존 맛!!!!!!! 없다. 진짜 맛없음. 화장품맛. 절대 먹지마시오 경고합니다. 그냥 바닐라맛 드세요. 그러나 포장지는 예쁘다.
오토바이도 라벤더색이다. 이런 거 아기자기 해놓는다고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후하게 평가해줄 생각 없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라벤더 아이스크림.................제발 바닐라맛을 드세요. 이 블로그 포스트를 읽는 운 나쁜 누군가들에게 내가 진심으로 전달하고 싶은 유일한 메시지다.
다시 또 한참을 달려 삿포로로 돌아왔다. 우리는 오랜 드라이브에 모두 너무나 지쳤고, 배가 고팠다. 게다가 당장 다음날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하는데, 일본까지와서 쇼핑이라곤 고작 1시간도 안 되게 돈키호테에서 시간을 보낸 게 전부라는 사실이 너무나 슬펐다. 나는 무조건 백화점 같은 곳을 가서 밥도 먹고 쇼핑도 좀 해봐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렇게 삿포로 역과 연결되어있는 어떤 쇼핑몰에 들어갔다.
배고파서 일단 밥부터 먹었음. 우동 면 통통한 것 좀 보세요. 라벤더 아이스크림으로 분노한 나의 혀와 위장을 달래주었다.
쇼핑몰을 돌아다녔는데 뭘 특별히 사진않았다. 딱히 살만한 게 없었고, 사고 싶은 건 말도 안 되게 비싸서 그냥 구경만 했다(흑).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며 로손 편의점에서 또 저 우유 푸딩을 사온 뒤 이불 속에 파묻혀 먹었다. 저 푸딩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