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남권, “공원, 병원, 어린이집…제대로 된 게 없다”
2013-07-13 06:00
CBS노컷뉴스 전솜이 기자
서울 영등포, 강서, 구로, 금천 등 서남권이 ‘낙후지역’의 불명예를 벗지 못하고 있다. 지난 70~80년대 강남 개발에 치이고 2000년대 이후 강북의 ‘뉴타운’에까지 밀리는 등 서남권은 계속 소외됐다. 밀집돼 있는 공장단지와 열악한 주거 환경은 21세기 서울의 경쟁력과는 거리가 멀다. 뒤늦게 서남권에 대한 투자와 개발 약속이 잇따르고 있지만 각종 규제와 경기 침체 여파로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CBS노컷뉴스는 낙후된 서울 서남권을 4차례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 주]
<싣는 순서>
① 지금도 ‘공중변소’ 쓰는 21세기 서울시민
②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더 가난해지는 동네
③ “최악의 출근길, 언제나 풀리려나“
④ “공원, 병원, 어린이집...제대로 된 게 없다”
지하철 1호선 독산역 인근에 빼곡히 몰려있는 소규모 공장 지대. 역세권이지만 변변한 편의시설 찾기가 쉽지 않다. (전솜이 기자)
서울 금천구 독산동 주민들은 자신들이 ‘서울시민’이라고 잘 느끼지 못한다. 안양천 건너 경기도 광명시가 주 생활권 같기 때문이다. 작은 일 하나라도 하려면 결국 광명으로 넘어가야 한다.
최근 기자가 만난 금천구 주민들은 한결같이 “여기는 제대로 갖춰진 게 하나도 없다”면서 “차라리 광명으로 이사 가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소외감을 느낀다”고 했다.
주민들이 당장 급하게 느끼는 갈증은 의료 시설이다.
현재 금천구에는 대학병원이 없다. 그나마 구로구에 있는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이나 관악구의 보라매병원 근처에 산다면 운이 좋은 경우다.
독산역 인근에 사는 한 주부는 “흔히 역세권에는 생활편의시설이 갖춰져 편리하다고 하는데 여기는 정말 역만 있고 아무것도 없다”면서 “애들 때문에 소아과, 이비인후과를 갈 때마다 (광명) 하안동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화(41·여) 씨는 “소아과나 내과가 있어야 약국이 따라 들어올텐데 여기는 약국도 없어 약 하나 사려고 광명시에 간다”고 했다.
박용달(59) 씨도 “큰 병원이 너무 멀어 참 힘들다”면서 “여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다 대학병원 하나 들어오길 바라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금천구청이 지난해 내놓은 사회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주민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보건의료 시설’(19.3%)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공원과 유원지 등 녹지공간(19.1%)을 꼽았다.
금천구의 녹지 면적은 2.9km²로, 서울 25개 자치구 평균인 10.11km²에 크게 못 미친다. 근린 공원도 달랑 3개뿐, 금천구 안의 모든 공원을 다 세어봐도 51개로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적다.
독산동으로 이사 오기 전엔 노원구에 살았다는 최 씨는 “노원구에는 아파트 사이사이에 공원이 많은데 여기는 공원이 없다”면서 “있다고는 해도 산기슭 공원이라고 저 꼭대기에 있거나 유모차 밀고 갈 수 없는 안양천변 뿐이어서 엄마들 끼리 모이면 애 데리고 나갈 데 없다는 말을 참 많이 한다”고 했다.
소현자(44·여) 씨는 “아파트에는 작은 놀이터라도 있지만 다세대 주택가에 가면 아이들이 놀 곳이 너무 없다. 작년엔 한 초등학생이 길에서 놀다 마을버스에 치어 숨지기도 했다”며 불안함을 전했다.
여기에 육아를 포함한 교육 시설도 변변치 않다.
서울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현재 자치구별 국공립 어린이집의 수는 평균 27곳이지만 금천구는 14곳에 불과하다.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적다. 그나마 있는 민간 어린이집이나 가정 어린이집 수도 서울시 평균 이하다.
김미아(41) 씨는 “그나마 독산1동에 국공립 어린이집이 하나 있는데 아이들이 워낙 많아 대기자가 무려 200~300명”이라며 “(나도) 겨우 200번대 대기 번호를 받았다”말했다.
또 다른 주부는 “집 바로 앞에 구립 어린이집이 있어서 큰 애 낳자마자 대기를 걸어놨는데 결국은 순서가 안 돼 못 보내고 저 멀리 차를 태워 보냈다”면서 “이 근처 엄마들에게 구립 어린이집은 ‘로또’ 당첨 수준”이라고 했다.
금천구 독산동의 소규모 공장 사이를 지나다니는 초등학생들 (전솜이 기자)
학교 주변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주변에 온통 소규모 공장이 많다 보니 부모들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경화(54·여) 씨는 “어떤 초등학교는 공업지역 한복판에 있어서 탑차가 왔다 갔다 하고 불법 체류자도 많다”며 “이 동네 엄마들은 아이가 3~4학년 정도 돼도 불안해서 등하교를 같이 한다”고 전했다.
학교도 멀고 학원도 많지 않아 이곳 엄마들은 아이가 6학년쯤 되면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것을 심각하게 고민한다는 말도 나왔다.
이처럼 병원, 어린이집, 공원과 같은 주민 생활 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게 없어 주민들은 “서울 시민인데도 서울시민 같지 않다”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 주민은 “강남은 워낙 잘 사는 곳이고 강북도 개발 움직임이 있었는데 여기는 워낙 오랫동안 낙후돼 있어 박탈감을 많이 느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기사 주소: http://www.nocutnews.co.kr/1067774
***
낙후된 서울 서남부권을 조명하는 기획기사 마지막편. 이날은 하루종일 독산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취재했다. 사실 서울같지 않은 일부 모습에 조금 놀라기도 한 것이 사실. 이 동네가 혹여 안 좋은 인식으로 낙인찍힐까봐 여전히 걱정되고, 과연 이를 오해없이 담백하게 잘 담아낼 수 있을지 내 기사 작성과 취재 역량에 나 역시도 의심이 매우 가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이왕 기사화하는거, 그 동네 분들의 불편사항을 최대한 자세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금천구청 홍보실의 도움으로 주민들 섭외와 인터뷰를 무난하게 마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 사진은 내가 직접 찍었는데, 당시 내가 쓰던 옵티머스G의 화질은 구리구리했다. 모든 기사에 사진 기자 선배들의 사진을 쓰긴 어려웠기 때문에, 가끔 현장에서 내가 직접 사진을 찍어서 보낼 때마다 늘 선배들에게 한 소리씩 들었던 기억이....ㅠㅠ 요즘같은 시대에, 기자들은 사진을 위해서라도 좋은 핸드폰을 써야 한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