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0일. 열세번째 날.
코펜하겐 현지인(?) B오빠 덕분에 미친 물가의 나라 덴마크에서, 2만원을 넘지 않는 가격으로 무려 부페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코펜하겐이 생각보다 너무 예쁘고 마음에 들어서 들뜬 기분에 나는 레드와인까지 시키는 호사를 부렸다. 점심을 먹고 풍족함을 느끼며 뉘하운 다음으로(어쩌면 뉘하운보다도 더...?) 기대했던 곳인 레고스토어에 갔다. 여행계획을 짤 때는 레고랜드에 가고 싶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비수기라 개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차피 코펜하겐에서 레고랜드는 멀다니 개장했어도 갈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였나, 아쉬운 마음에 더욱더 레고스토어를 기대했나보다.
레고스토어는 들어가자마자 자신들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기 시작한다. 장난감 주제에 멋진 전통이 있다니...
레고로 하나하나 코펜하겐을 꾸몄다. 심지어 내가 직접 눈으로 본 것보다 더 멋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레고 부품을 색깔별로 판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 때 내 남동생이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만해도 걔는 레고에 푹 빠져 살았다. 그 때의 내 동생을 여기 데려왔었더라면 아마 하루종일 이 곳에서 나가지 않았겟지? 내 동생만큼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어린시절부터 꽤 열심히 레고를 가지고 놀았기때문에 레고에 애착이 많아, 이곳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다.
이 귀여운 사람들같으니...레고로 뉘하운도 만들고,
예쁜 정원도 만들고,
크리스마스 마켓도 만들었다. 귀여워...귀여워....너무 귀여워.....나는 여기서 귀염사했다. 비록 가격은 전혀 귀엽지 않았지만.
레고 스토어에서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코펜하겐 시내가 눈에 찬찬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 이 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갑자기 찾아왔다. 구름이 조금씩 걷히면서 햇빛이 조금 강해지는구나 싶더니,
이렇게 길거리에 햇빛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해,
결국은 이렇게 쏟아져버렸다. 내 인생에서 가장 눈부시게 밝은 석양이었다. 햇빛이 말그대로 내 발 앞에 쏟아져내렸다. 코펜하겐은 정말 멋진 곳이라는 생각밖엔 안 들었다.
엄청나게 멋진 길거리를 해치고 나오니 시청사가 나왔다. 나는 이미 흥분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다.
시청사 근처엔 정말 가보고싶었던 테마파크인 티볼리공원이 있다. 사실 놀이기구 자체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시시하기 그지 없다지만, 놀이공원의 장식이 매우 빈티지하다는 가이드북의 설명을 보고 무조건 가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비수기라 개장하지 않았다. 거기에 모자라, 내가 코펜하겐을 떠나는 바로 그 다음날 크리스마스 시즌 개장을 한다는 가슴아픈 소식까지 전해들어야 했다.
아쉬워서 길가에서 보이는 정도로만 찍었다. 티볼리 공원...너무 궁금하다....가고싶다....ㅠㅠ
하지만 이 날 코펜하겐은 아름다웠다. 코펜하겐은 이름부터가 뭔가 동화스러워서 괜히 환상을 가지고 있던 북유럽 도시였는데 나의 환상을 첫날부터 완벽히 충족시켰다.
북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코펜하겐 역시 자전거 천국이다. 오후 다섯시밖에 안 된 시간, 모델처럼 생긴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리고 나와 퇴근길로 쏟아져나오는 풍경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나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퇴근 시간, 남자가 육아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분담하는 모습, 도로에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많은 풍경, 그리고 이 사람들의 잘나디 잘난 비주얼까지. 왜 나는 이런 멋있는 삶의 방식을 가진 도시가 아닌 곳에서 살아왔는지 억울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