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1일. 열네번째 날(1)
전날과 달리 날이 매우 맑았다. 물론 추웠지만, 거의 매일 비가 와서 어둡다는 겨울 북유럽에서 이런 밝은 날은 흔치 않다기에 혹시라도 다시 어두어질까봐 호스텔에서 씻자마자 곧바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뉘하운으로 달려가 충동적으로 운하 투어를 하는 보트를 탔다. 회사마다 가격이 조금 다른 것 같았는데, 내가 탄 건 40크로나였다. 밝은 날 보는 뉘하운은 어제 흐린 날씨에서 봤던 뉘하운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줬다.
보트는 뉘하운에서 출발해 코펜하겐 운하를 따라간다. 비록 귀가 얼어버릴 것처럼 추웠지만 날씨가 지나치게 좋아 그 정도의 추위 정도는 감내할 수 있었다.
까만색 유리 덕에 '블랙 다이아몬드'라는 별명을 가진 덴마크 왕립 도서관 앞도 지나갔다. 운하에서 블랙 다이아몬드를 보면서 이따가 저 안에 꼭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운하는 이런 다리도 통과한다.
다리 밑을 직접 운하를 타고 통과할 때면 뭔가 놀이공원 어트랙션을 탄 기분까지 들었던 걸 보니, 내가 쾌청한 날씨에 지나치게 업돼있었나보다..
운하에서 내리니 곧장 코펜하겐 중심가인 스트뢰이어트(StrØget)가 나왔다. 날이 좋으니 전날보다도 더더욱 그림엽서같았다.
길거리에서 파는 꽃도 괜히 더 예쁘다.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덴마크 토종 브랜드라는 MAX에 들어가 햄버거세트를 시켰다. 가장 맛있는 햄버거로 꼽히기도 했다는데, 뭐 내 입맛에는 맥도날드나 다른 버거와 큰 차이점이 없었다.
다시 거리로 나와 원형탑을 찾아갔다. 법적 제한 탓에 6층 이상의 건물이 코펜하겐 시내엔 거의 없는데, 그런 코펜하겐 시내에서 유일하게 전망(?)을 볼 수 있는 높은 건물이 바로 원형탑이라고 한다. 난 원래 위에서 내려다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큰 기대를 안고 떠났다.
원형탑에 도착하면 이런 구불구불한 통로를 따라 올라가야한다.
그러면 이렇게 코펜하겐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생각보다 원형탑에서 내려다본 코펜하겐은 그저 그랬다. 지상에서 본 코펜하겐이 이미 지나치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풍경을 좋아하지만, 코펜하겐은 예외다.
다시 스트뢰이어트로 나왔다. 스트뢰이어트는 유럽에서(?) 가장 긴 보행자 거리라는데, 길기도 길지만 아름답기도 아름답다. 유럽 여행은 이렇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한데, 그 중에서도 스트뢰이어트는 기억에 남을 정도로 눈이 즐거웠다.
자전거의 도시답게 자전거 가게도 색다르다.
그러다 전날 들어갔던 레고스토어를 또 발견, 유혹을 참지못하고 또 들어갔다. 이틀 연속 방문이라 직원이 날 보고 아는 체를 하길래(왜이렇게 쓸데없이 덴마크 사람들은 친절한걸까...) 민망했다. 직원 눈을 피해 혼자 어린이들 틈바구니에서 레고 사람을 만들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 조용히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