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4일. 서른 일곱번째 날 (1)
하루를 제대로 농땡이피운 나는 이 먼 곳까지 와서 잉여로움을 만끽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또다른 투어를 신청했다. 남부 해안과 폭포를 본 뒤 빙하하이킹을 하는 투어다. 역시 또 새벽같이 버스를 타고 황무지를 달렸다. 이날 탄 버스는 사실 버스는 아니고 10인승의 소형 봉고차였다. 영하 10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찍어버리는 겨울 아이슬란드 날씨에 빙하 하이킹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나보다. 나 역시 자신없었지만 허세 하나만으로 도전했다. 가진건 허세 뿐입니다. 후후..^_ㅠ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는데, 여기 화장실에서 정말 뜬금없이 한국을 만났다. 아니, 한국인은 커녕 인간의 흔적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는 이 황무지에서 장풍이라니. 덕분에 손을 뽀송하게 말릴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까지 진출한 바이오 장風 감사합니다.
스코가포스 Skógafoss 폭포에 도착했다.
이제 이 정도 추위엔 끄떡하지 않아.
이런 얼음 개천(..)도 건너야 한다.
여행사 사이트에 올라온 여름철의 푸르딩딩한 폭포사진과는 좀 다르지만, 그래도 역시 또 외계 행성에서 볼법한 폭포가 펼쳐진다. 높이가 62m나 된다고 한다. 굴포스의 스케일엔 비할바 못되지만, 그래도 역시 엄청난 규모의 폭포라 신이 났다. 엄마아빠말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폭포는 무조건 좋아했다고 하는데, 역시 커서도 폭포는 무조건 좋다.
멋쪙.
멋쪙2.
역시 초점 못 맞춘 파노라마 사진이지만, 멋쪙 3.
하늘과 땅이 구분이 되지 않는듯한 이 외계스러운 느낌, 겨울 아이슬란드는 정말 너무 춥고 척박하고 황량하지만, 이 느낌이 너무나 인상깊었기때문에 나는 아이슬란드를 겨울에 가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나 춥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폭포의 감동을 뒤로하고 다시 차로 돌아갔다. 진짜 너무 추웠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더 추워질 줄은 상상조차 못했지.
졸다가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사이에 깼다. 에이야프알라요쿨 Eyjafjallajökull 화산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름 한번 참 절대 기억할 수 없게 생겼다.
이 화산(에이야 어쩌고하는 긴 이름을 다시 타이핑하기가 귀찮다. 사실 저 이름도 네이버에서 퍼왔다. 걍 '이 화산'으로 통일시켜야지)을 보니 괘씸하면서도 반가웠다. 2010년, 내가 프랑스에 교환학생에 있던 시절 엄마와 부활절 방학에 여행을 하다가, 프라하에서 파리로 이지젯을 타고 날아가야 하는 바로 그 날 폭발해버려서 전 유럽의 공항을 폐쇄시켜 나에게 잊지못할 멘붕을 안겨준 바로 그 화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날 혼란의 프라하 중앙역에서 간신히 파리로 돌아가는 야간열차 티켓을 구했는데, 그 열차 안에서 온갖 국적의 유러피안들이 이 화산이 폭발해버리는 바람에 벌어진 눈물없이는 듣기 힘든 사연(런던에서 열리는 딸 결혼식을 놓쳤다거나, 파리에서 만나 성사하기로 한 대규모 계약 미팅이 취소되어버렸다거나....흑흑)을 서로 나누던 기억이 난다.
너가 그 화산이란 말이지.
이 화산에는 전망대(?)같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올라가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내려오다가 나는 내 키의 1.5배쯤 되는 눈구덩이에 빠져버렸다. 지금이야 재밌는 에피스드인양 블로그에 끄적이고 있지만, 사실 땅으로 꺼지는 순간 이렇게 세상을 뜨는 줄 알았다. 초딩때 버티칼 리미트라는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산악인들을 그린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영화를 보면 간혹 나처럼 발을 잘못 디뎌 크레바스에 빠져 죽는 사람들이 나온다. 나는 내가 그렇게 죽는 줄 알았다. 어쨌거나 놀란 사람들이 나를 꺼내서 구해줬고 나는 살아서 빠져나왔다.
옷이며 양말이 눈에 파묻혀서 모조리 젖어버렸고, 그 덕에 발가락은 빨갛게 부어올랐는데 더 무서운 건 발가락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따뜻한 차를 갖다주고 히터 가까이에 날 앉게 했지만 나는 동상에 걸리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함에 사로잡혔다. 나는 차 안의 와이파이를 잡아서 곧장 네이버에 '초기 동상 증상'을 쳐봤고, 내가 초기 동상 증상 비스무리한 증상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빙하하이킹을 하러 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나는 덜덜 떨며 내 발가락을 미친듯이 주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