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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3 퇴사기념 프랑스/베를린/북유럽3국/아이슬란드

[퇴사기념 유럽여행 기록 35] 아이슬란드 -Sólheimajökull 빙하에서의 빙하하이킹(glacier hiking)

2013년 12월 4일. 서른 일곱번째 날 (2)





눈구덩이에 빠져서 동상에 걸릴까봐 쫄아있던 나를 태운 봉고 버스는 어느덧 빙하하이킹을 할 빙하인 Sólheimajökull  빙하에 도착했다(뭐라고 읽는지 모른다. 구글에 how to pronounce Sólheimajökull 를 검색해서 들어보기까지 하는 노력을 기울여봤지만 들어도 모르겠어..). 


사실 가이드는 내가 빙하하이킹용 신발을 가져오지도 않았고(미리 신청하면 돈주고 빌려준다고 한다. 나는 바보야...흑흑), 이미 눈구덩이에 빠져서 체온이 너무 떨어져있는데다 옷과 양말이 다 마르지 않았기때문에 위험하다며 하이킹은 하지 말라고 했다.  버스기사, 같이 떠난 다른 관광객들도 나를 모조리 뜯어말렸다. 혼자 버스에서 계속 졸다가 눈구덩이에 빠져버린 삐쩍 마른 동양인 여자애의 빙하하이킹만큼은 무조건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기가 너무 아까웠다. 엄청난 갈등 끝에, 결국 나는 (내 기준에선) 생사를 건 도전을 하기로 했다. 친절한 버스기사 아저씨가 나에게 자기가 입고있던 방수 멜빵바지를 빌려주셨다. 나 말고도 한 사람은 더 들어갈 수 있을듯한 지나치게 넉넉한 사이즈였지만, 그 아저씨의 옷 덕분에 나는 결과적으로 무사히 하이킹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아이젠과 망치같이 생긴 봉을 잡고 걸어야 한다. 저 아이젠을 제대로 차지 못해 가이드는 또 나를 도와줘야 했다. 본격 민폐녀 등극.



가이드는 우리에게 하이킹을 할 동안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려줬다. 특히 무조건 자기가 간 길 그대로만 따라가고 조금이라도 옆으로 벗어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지금은 겨울이라 눈이 평소보다도 더 쌓여있어 (나처럼) 빠지기가 쉬운데, 그 깊이를 자기도 모르겠다고 무시무시한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만 빨리 떠나고 싶어서 두근두근두근. 어서 저 빙하를 밟고 싶어요!!!!



가이드를 따라 조심조심 하이킹을 시작했다. 발가락은 여전히 쑤시고 아팠지만 점점 참을만해졌다. 사람과 동물의 흔적이 아무 것도 없는 빙하를 아이젠으로 콕콕 찍어가며 걸으니 매우 재밌었다. 



틈틈히 이렇게 뭐라고 설명도 해주는 친절한 가이드였지만 



나는 이렇게 사진을 정신없이 찍어댔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눈을 밟고싶은 충동을 이기지못해 발을 디뎠다가 얕은 눈구덩이에 두번이나 빠질뻔..... 민폐녀 등극2ㅠㅠ. 가이드가 나보고 "Remember, Snow is not your friend"라고 말했을때 정말 진심으로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점점 하이킹에 익숙해졌고, 이런 동굴을 발견했을 때는 포즈도 잡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하이킹은 두시간 남짓 했었던 것 같다. 사실 가장 쉬운 하이킹 코스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언제 동상에 걸릴 위험에 처한 발가락과 함께 한겨울 아이슬란드에서 빙하 하이킹을 해보겠어. 내 인생에서 가장 무모한 도전정신이 넘쳐났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