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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3 퇴사기념 프랑스/베를린/북유럽3국/아이슬란드

[퇴사기념 유럽여행 기록 6] 껑 또는 캉(Caen)

2013년 11월 3일. 일곱번째 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베를린에 가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껑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푹 자고 일어난 우리는 껑 보자르(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보자르에 가려면 껑의 상징인 샤또(성)를 무조건 지날 수밖에 없다. 신난다!



껑의 날씨는 정말 기묘하다. 맑음과 흐림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실제로 껑 기상예보에는 '해+구름+비+번개' 네 가지 표시가 동시에 다 그려지는 날들이 허다하다. 이 날도 그랬다. 껑의 날씨는, 그냥 좀 멋져.



우산 따위 가볍게 뒤집어지는 그런 바람, 껑에서는 흔한 일이다.



1년 살면서도 한번도 안 가본 껑 미술관. 프랑스에서는 미술관을 미술을 통칭하는 '보자르(Beaux-arts)'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고전 회화는 좀 지루했는데, 현대 미술은 재밌어서 집중해서 봤다. 미술에 대해선 그닥 아는 바가 없어서 그런거진 몰라도, 나는 그림을 볼 때 색감에 집중해서 본다. 나한테 좋은 그림은 색감이 좋은 그림이다. 색감이 너무 좋아서 내게 뭔가 기억이나 추억을 상기시키면 최고의 그림.



미술관에서 나와 성벽을 따라 걸으니 날씨가 다시 화창해졌다. 바로 앞에 생피에르 성당도 보인다. 새로운 쇼핑몰이 생기고 트람 표 인식하는 기계도 달라지고 까르푸 카트도 바뀌었다고 섭섭해한 나는 얼마나 쪼잔한 인간인가. 성 위에서 만난 껑은 3년 전 그대로였다. 





성에서 내려와 레스토랑이 밀집한 곳으로 갔다.



가는 길에 보이는 추억의(?) SMENO 학생보험 사무실.



생피에르 성당 옆에는 이렇게 예쁜 식당들이 모여있는 작은 지구가 있다. 여기를 뭐라고 부르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우리는 Dolly's라는 밀크티를 파는 곳에 왔다. 영국식 찻집으로, 껑에서는 나름 데이트코스로 유명한 '핫플레이스'다. 역시 이 곳도 3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이 카페의 분위기가 정말 좋다. 한국에도 생기면 내가 단골손님이 될텐데. 



밀크티와 핫케이크를 싹싹 비운 우리. 



언제 이 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했는데 3년만에 다시왔다. 그 날도 같은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내가 여길 언제 또 다시 올 수 있을까. 인생은 정말 한치앞도 내다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리움, 섭섭함, 아쉬움 같은 인간의 조악한 감정들이 어느 순간 너무나 우습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담담하지만 심각하지 않게, 가볍지만 얕지 않게 살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우연히도 내가 껑에서 산 여행 수첩에 적힌 문구가 'Life is far too important to be taken seriously'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