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6일. 여행 넷째날(1)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고대한 여행지는 코트다쥐르(Côte d'Azur)와 프로방스(Provence) 지역을 아우르는 남프랑스였다. 프랑스 교환학생때 여름 방학동안 루아르 고성 지역과 남프랑스를 돌아볼 야심찬 계획을 세우다 집에 큰 일이 생겨 한국으로 잠시 귀국을 해야했는데, 그때 남프랑스에 가보지 못했던 게 큰 아쉬움으로 남았었다.
남프랑스를 미리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걸 보아하니 남프랑스는 내가 살았던 프랑스 북부와는 달리, 햇살이 가득하고 이탈리아풍의올리브 오일이 듬뿍 들어간 음식과 다채로운 색감과 수천가지의 퍼퓸으로 가득찬 그런.... 약간의 칼라풀한 낙원같은 느낌. 한마디로 환상이 듬뿍 담긴 여행지였다.
일단 우리는 니스(Nice)를 코트다쥐르 지방의 거점으로 잡았는데, 그 이유는 그냥 니스가 제일 큰 도시처럼 보여서 근교 다니기 편해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 곳곳에서는 니스로 곧바로 가는 저가항공 취항지가 많아서, 아마도 코트다쥐르 도시 중에선 니스가 전유럽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도시가 아닐까 싶다. 우리도 런던 개트윅공항에서 이지젯을 타고 니스로 날아갔다. 비록 비행기 이륙이 3시간이나 지나버려서 우리를 소소하게 열받게 만들긴했지만, 그래도 이지젯은 어쨌거나 안전하게 우리를 니스로 데려다줬다.
나는 누가 저가항공에서 음식을 사먹냐고, 그거 땅보다 비싸게 받고 다 호갱되는 짓이라고 엄마에게 큰소리를 치던 공항에서의 모습을 싹 잊어버리고, 굶주림에 지쳐 랩 샌드위치와 프링글스를 사먹었다. 내 마지막 자존심상, 얼마였는지는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아.... 어쨌거나 허기를 채운 나는 흡족한 마음으로 창밖을 열심히 내다보았다. 이 사진은 도착하기 30분쯤 전에 찍은건데, 아마도 많고 많은 코트다쥐르의 해변가에 위치한 도시 중 하나겠지.
3시간이나 지연된 탓에 우리는 예상보다 훨씬 늦게 니스 공항에 떨궈졌다. 다른 유러피언들처럼 유유하게 입국장을 빠져나가려다 단호박처럼 생긴 단호한 심사관 아저씨가 우리를 붙잡아세워서 프랑스 입국 도장을 찍어줬다. 신난다~ 이거 안 찍어줬으면 나 너무 서운해서 삐쳤을지도 몰라. 해외여행의 재미는 자고로 여권에 찍어주는 도장에서부터 시작한다. 내려서 화장실에 갔는데, 영국과는 달리 화장실에서 냄새가 진동을 해서 내가 프랑스땅에 온 걸 실감했다. 난 개인적으로 프랑스 사람들이 화장실 청소법을 기본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항에서 우리가 묵을 니스 캄파닐 성트르 호텔(Nice Campanile centre, 부킹닷컴엔 나이스 캄파닐 센터라고 나온다. 나이스ㅎㅎㅎㅎㅎ부킹닷컴 일 똑바로해랏ㅎㅎㅎㅎ 근데 가격대비 나이스하긴했어서 인정해줘야지)로 바로 가는 시내버스는 50분을 기다리라고 해서..... 더이상 우리는 무언가를 기다릴 힘이 없었기에..... 그냥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갔다. 호텔로 가는 길에 엄마는 불문과 졸업생인 나보고 자꾸 택시기사에게 말을 걸어보라고 했지만, 나는 이상한 아시아인이 되고 싶지 않아서(=불어를 거의 까먹었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 엄마에게 그런 거 말고 창 밖을 보라고 했다. 물론 밤이었기 때문에 뭐가 보이진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 우리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에즈 마을(Eze village). 니스에서 버스로 한시간도 안 되게 걸리는 근교 동네다. 호텔 프런트에 니스로 가는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물어봤지만, 프런트 직원이 구글에 검색하는 걸 보고 두려움이 몰려왔고 역시나 우리는 굉장히 헤맨 후에야 버스 정류장을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에즈 마을로 가는 버스는 언덕 위로 구불구불 올라가는데, 그러면 창 밖으로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날씨가 흐렸다.
에즈 마을 도착! 우리는 배가 고프고 뭔가 추운 기분이 들어서(....이러려고 남프랑스에 온게 아닌데ㅠㅠ) 마을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시켜 먹었다.
정보의 불모지인 이 블로그에 운 나쁘게 들어온 누군가를 위해 커피 정보를 제공하자면, 프랑스에서는 아메리카노라고 하면 스타벅스같은 곳 말고는 잘 알아듣질 못한다. 특히 이런 시골마을에선 더더욱. 아메리카노처럼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커피를 원하면 카페 알롱제(cafe allongé)를 달라고 하면 된다. 그래도 아마 아메리카노보다는 훨 찐할텐데, 그럴 땐 따뜻한 물을 더 달라고 하면 더 주니, 타서 마시면 된다. 하찮은 정보지만 그래도..... 자꾸 내 블로그에 여행 정보를 검색해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져서 이거라도......ㅠ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진짜 이 날은 장날이었다. 일요일이어서 벼룩시장이 선 모양이다. 만세~ 벼룩시장, 앤틱시장 광팬인 엄마와 나는 오는 길에 천천히 둘러보기로 하지만,
이미 가는 길부터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둘러봄.....
이런 길을 쭉 따라올라가면 에즈마을이다.
에즈 마을로 마저 올라가는 길 돌담에는 이렇게 꽃이 가득 펴있다.
뜻밖의 벼룩시장에도 불구하고 용케 에즈마을까지 잘 올라온 우리. 이제 저 돌문을 지나면 에즈마을이 시작된다.
요렇게.
에즈마을은 이렇게 골목골목 길거리를 쏠쏠거리며 잘 돌아다녀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
그 어떤 가게 하나라도 놓칠 수 없다!!
관광객이 물밀듯이 찾아오는 에즈마을에는 관광객을 유혹하는 소규모 아틀리에도 많다. 아틀리에 앞에 가득 핀 이 꽃들을 보고있자면.... 그냥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 물론 나는 실제로 그림을 그리진 않는다. 종이의 소중함을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환경보호에 무슨 기여를 하겠냐만은, 그렇다고 나무를 함부로해선 안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음ㅠㅠ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녹슨 테이블.
통후추를 가는 통(핸드메이드라며 30유로를 줬는데, 나중에 니스 시내에 가보니 비슷한 통이 15유로에도.... 우리 그림이 더 예쁘다고 서로를 위로해본다)과 마르세유 비누, 올리브 통, 크리스탈 귀걸이같은 예쁘지만 쓸모없는 것들을 사들인 우리는 배가 고파져서 한 기념품점 아주머니가 추천한 식당으로 향했다. le nid d'aigle(르 니 대글 이라고 읽는다) 이라는 곳인데, 아줌마는 꼭 야외가 아니라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창가 자리로 가서 지중해를 보면서 식사를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레스토랑 도착. 꽃이 가득 피어있는게 아주 이국스럽다. 일단 외관은 합격.
아줌마가 주신 고급 정보는 아마 모든 이가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는 상식같은 거였나보다. 이미 레스토랑 안은 사람들로 바글바글. 우리는 할 수 없이 야외에 앉았다. 야외도 뭐, 바람도 불고 유러피언된 기분이고 뭐 나쁘지 않았다. 이건 아쉬워서 정신승리하는게 아니다....... 우리는 니스풍의 샐러드와 피자를 시켰다. 피자가 아주 맛있는데, 바게트처럼 바삭한 빵 위에 치즈와 토핑을 듬뿍 얹어준다.
계산을 하려고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는데, 창가 자리가 비어있다!!! 나는 엄마를 호들갑스럽게 불러서 창가자리를 차지한 후에, 커피를 한잔 시켰다. 이 풍경 우리도 즐기고 가는구나 ㅠ0ㅠ
이렇게 울엄마 허세샷도 한장 찍어줘야지.
배도 부르고 풍경도 즐기고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골목골목을 가열차게 탐방하기 시작한다.
걷다보면 이런 교회도 하나 나온다. 원래 에즈마을에선 마을 꼭대기에 있는 에즈 정원에 가야 경치가 좋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냥 가지 않기로 했다. 일단 입장료가 좀 아까웠고, 경치는 레스토랑에서도 봤고, 에즈 정원에 심어져있는 이국적인 식물이 (보지도 않고) 어머니는 싫다고 하셨어~ (feat.한때 날 빠순 생활로 몰아넣은 god)
정원에 올라가지 않아도 풍경이 좋기만 하다. 이건 에즈정원에 안 가본 자가 뭘 모르고 까부는건가여?
다시 마을 입구로 내려온 우리는 벼룩시장에 집중해서 바바리안 그릇을 뚜껑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말도안되는 가격에 득템하는 경사를 누린다.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기념품점에서 포푸리 주머니와 틴케이스를 골랐는데, 어쩌다보니 이 주인 아주머니가 내가 살던 껑 근처의 바닷가마을 위스트르앙에서 온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돼서 우리는 호들갑을 떨며 반가워했다.
남의 흑백사진을 누가 살지는 몹시 의문스럽지만, 그래도 보는 재미가 있는 흑백사진들.
그렇게 에즈마을을 구경하고, 우리는 모나코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원래 평일에는 모나코로 직행하는 버스가 있는데, 주말에는 에즈 기차역 쪽으로 가서 다시 모나코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야된다고 한다.
에즈, 안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