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4일. 여행 셋째날.
나의 게으른 신체에는 도저히 맞지 않는 빡센 하루를 보내고 나서 기절한 것처럼 잠든 후에 다시 빡센 하루2를 보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한인민박에 묵었는데, 그 민박 옆 집은 정원가꾸기 좋아하는 영국인 아니랄까봐 이렇게 현관 앞을 꾸며두었다. 참나, 집 앞이 뭐 이렇게 예쁘고 난리야.
대영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또 이렇게 계단에 층층마다 예쁜 화분을 놓아둔 집을 발견했다. 아, 이렇게 꾸며놓지좀 마세요. 나같은 소인배는 부러워서 몸둘 바를 모르겠단 말입니다!
대영박물관은 고등학교 시절 30분동안 발을 디뎌본 걸 포함해 이번이 세번째라 나는 유적보다는 유적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집중 관찰했다. 그렇다고 내가 유적에 대해 빠삭한 지식을 갖춘 건 당연히 아니다.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에 끼어 무식함과 게으름을 한껏 드러내는 20대 딸과는 달리, 50대 어머니는 오디오가이드 설명을 한자한자 꼼꼼히 들으며 그 어떤 설명도 놓치지 않으려는 학구열을 보였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나는 무척 감동했지만, 나는 '이 박물관에 있는 건 거진 다 훔쳐온 거야 영국인 개객끼들'이라고 수없이 말하며(유일하게 내가 아는 척 할 수 있는 팩트다) 미라에 집중했다. 미라는 언제 봐도 참 신기하다.
그러다 나는 웨지우드를 비롯한 왕족들이 쓰던 각종 장신구와 식기류에 꽂히게 된다.
영롱하고 아름답구나....
까메오 하나만 떼어서 가져가고 싶다.
저 식기에 쇼트브레드와 홍차를 달라고 영국식 억양으로 얘기해보고 싶은 허세에 사로잡혀버린 순간.
대영박물관을 다 보고 나온 우리는 거리에 있는 식당 아무데나 들어가 샐러드와 피쉬앤칩스를 시켰는데..... 아저씨, 왜 이렇게 태워서 주는거죠. 바삭바삭이 그 정도가 지나친 피쉬앤칩스였다.
점심을 먹고나서 우리는 내셔널 갤러리로 향했다. 내셔널 갤러리는 내가 예전에 1시간도 채 안되게 둘러본 역사가 있다. 예전에 아빠가 네덜란드 고흐 뮤지엄에서 10분?만에 둘러보고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선 내가 한참을 이토록 무식할 수가 없다고 비난했는데, 아빠가 부디 이 블로그의 존재를 몰랐으면 한다.
어떤 젊은 남자가 바닥에 분필로 국기를 그리고 있었다. 전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은 자기 나라 국기에 동전을 던졌는데, 나는 공사중이라 내셔널 갤러리 정문이 폐쇄되어서 서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안내를 보고 지나치게 헤매고 있는 탓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고 항변해본다).
어찌어찌 서문을 찾아서 내셔널갤러리 입성. 이 그림 참 좋다. 여기서도 엄마는 오디오가이드를 귀에서 빼지 않았고, 나는 보이는 의자마다 앉아서 쉬었다. 어째 이 블로그는 나의 예술적 밑천의 딸림을 드러내는 데 최적화된 공간같다......
내셔널갤러리 관람을 (사실상 엄마만) 마치고 코벤트 가든으로 갔다.
활기가 넘친다.
코벤트 가든엔 주로 브랜드샵들이 입점해있어서 사실 특별히 이렇다할 빈티지샵이나 기념품샵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나는 이 분위기가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엄마를 굳이굳이 여기까지 끌고 왔다.
코벤트가든을 대강 둘러본 뒤 버스를 타고 해롯백화점으로 가기 위해 나이트브리치로 가는 버스를 탔다. 건물 분위기가 점점 부촌의 느낌을 물씬 풍기기 시작한다.
해롯백화점 도착.
사실 대영박물관, 내셔널갤러리, 코벤트가든같은 굵직굵직한 곳들을 돌아다니느라 이미 다리는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이 침구 사진은 예쁘고 맘에들어서가 아니라, 눕고 싶어서 본증적으로 찍은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이런 건 참 예쁘단 말이야. 아마 내가 부자였더라면 내 방에는 이렇게 예쁘고 쓸데없는 물건들이 가득했겠지. 신은 역시 현명하다. 내가 사치스러운 인간이 되는 것을 몸소 막아주셨어.
해롯 백화점을 나갈때 쯤, 나는 해리포터 코너에 이르르게 된다. 사실 엄마랑 같이 온 게 아니었더라면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무조건 갔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약간(이라고 쓰고 '울분이 터질 정도로') 아쉬운 상태였다. 삼십 몇 파운드의 정신나간 태그를 달고 있는 헤르미온느의 지팡이를 살까 고민하다가, 신이 나를 부자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머글답게 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