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5일. 여행 열세번째날(2)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고대하던 것 중에 하나가, 알프스 산을 하이킹하는 거였다. 그린델발트에서는 마을 위주로 산책을 빙자해 짧게 걷긴했지만, 이 리기산 하이킹이 진짜 하이킹이라고 생각하고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원래 너무 기대하면 실망하기 마련인데, 그 기대를 모조리 충족시켜주었다.
이름모를 작은 하얀 꽃이 피어있는 리기산 정상.
우리는 하이킹하는 사람들을 위해 잘 정비되어있는 길을 따라 리기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코스로 걸었다.
바람이 불어서 선글라스가 머리에 걸리적거리는 와중에, 겉옷을 벗으면 춥고 입으면 더워서 난감했음.
그러나 여기선 그런거 신경쓰지말고 풍경이나 봐야한다.
저런 벤치에 앉아서 보면 더 좋음.
바닥에 앉아서 보면 또 더 좋음.
선베드를 발견하고 나는 엄마보고 누워보라고 했지만, 이런 게 어색한 엄마의 자세는 어정쩡하기 그지없다.
반면 나는 너무나 편안한 자세임. 엄마와 나의 누워있기 신공이 차이나는 순간.
여기도 알프스 아니랄까봐, 아직 눈이 조금 남아있다.
풍경이 너무 그림같으니 빨리 사진을 찍어보라고 재촉하는 어머니.
점점 지쳐갈 때쯤,
눈 앞에 심상찮은 파노라마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여기가 천국인가보다.
너무 아름다워서 말문을 잃어버린 모녀.
여기가 바로 천국, 헤븐, 파라다이스, 낙원 뭐 그런 덴가 봐요.
카메라를 어떻게 갖다 들이밀어도 다 예쁘게 찍힌다.
저런 길을 따라 그냥 풍경을 즐기면서 걷기만 하면 되니, 리기산은 얼마나 은혜로운 하이킹 코스인지.
아름다움이 지나쳐서 심장에 또 해로운 것 같다.
엄마는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했다.
이제 슬슬 마을이 나오는 길로 내려가는 것 같다.
이런 데 살면 무슨 생각이 들까?
호수와 산과 초원이 뒤엉킨 이 말도 안되는 천국같은 풍경을 보시려면 여러분 꼭 리기산으로 가세요.
이제 마을로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잠시 앉아서 쉬면서 사과도 한알씩 먹었음.
기차를 타고 올라왔던 거랑은 달리, 내려갈 때는 리기산 중간 지점 즈음에 있는 리기 칼트바드(Rigi Kaltbad) 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나는 이왕이면 최대한 다양한 탈것을 타고싶어하는 사람이다.
리기 칼트바드 역에 다다르니, 이런 체스판이 다 있어서 귀여웠다.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에, 스파를 즈기는 사람들을 보았다. 우리는 몹시 부러워하며, 다음번엔 우리도 저 스파에 가보기로 결심.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중. 기차역엔 사람이 북적거리는데, 케이블카 타는 곳은 매우 한산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도 환상적이다.
이 케이블카를 타면 베기스(Weggis)란 마을로 내려가게 된다. 다시 여기서 루체른으로 가는 유람선을 타면 된다.
베기스 도착.
작고 아기자기한 마을이다. 저 난쟁이 인형들이 귀여워서 찍어봤다.
어디가 유람선 타는 곳인지 몰라서 마을에서 살짝 헤맬 뻔함.
무사히 유람선 타는 곳에 도착했다. 꽃 색깔이 파스텔톤인데, 색감이 정말 예뻤다.
유람선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30분 정도 남아서, 선착장을 돌아다니며 호수 풍경을 감상했다.
개인적으로 이 사진을 정말 그림같은 사진이라고 생각함.
유람선이 도착했다.
리기산 하이킹을 마치고, 루체른으로 돌아가는 길. 정말 환상적인 하이킹이었다.
저 머리 긴 사람을 보면서, 우리는 만약에 아빠가 저렇게 머리가 길면 얼마나 웃길까 상상하며 계속 웃었다. 밑도 끝도 없는 설정과 상상이었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아빠를 대입해보면 정말 재미있다. 아빠 미안해요. 그치만 정말 웃겼음.
체크아웃을 하고, 루체른에서 취리히 공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루체른에서 취리히 공항까지 바로 가는 기차가 한시간에 한대 꼴로 있어서 편리했다. 기차 안에서 찍어본 취리히 중앙역. 여기서 쪼금 더 가면 공항이다.
비록 발을 디뎌보진 못했지만, 취리히는 이렇게 생겼구나 하면서 구경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한국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우리가 탈 비행기를 보고 긴 여행에 지친 엄마는 몹시 반가워했다. 우리의 2주 유럽여행은 그렇게 무사히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