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9일. 두번째 날
전날 11시 반이 다 되어서야 헨느에 도착한 나는 S오빠네로 갔다. S오빠는 헨느에서 교육학 석사 과정을 막 마친 상태였다. S오빠가 사는 집 2층에는 빈 방이 있어서 나는 이틀동안 거기서 지내기로 했다. 사실 나야 여행하면서 믹스 도미토리도 여러번 쓰고해서 별 거리낌이 없었지만 S오빠 입장에서는 불편할 법도 했는데, 그런 내색 없이 나에게 빈 방을 내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파리 호스텔에서와는 달리 따뜻하고 편안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헨느에서의 첫날 S오빠는 헨느에서 가까운 디낭이라는 소도시에 가보자고 했다. 시내에서 살짝 멀었기 때문에 부지런히 걸어서 시내까지 갔다.
시내로 가는 길에 본 헨느는 전날 파리와 달리 조용했다. 사실 헨느도 두번째 와보는 건데, 그 때는 구시가지 위주로만 다녔고 헨느 대학 근처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내에 도착한 우리는 11시에 디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헨느에서 디낭까지 가는 길마다 풍경이 지나치게 아름답더니, 디낭에 도착하자 급기야 내가 환장하는 저런 로마교가 나왔다.
버스에서 막 내려 디낭에 첫 발을 내딛었다. 작고 조용한 느낌이다. 날씨와 로마교때문에 난 일단 무작정 이 곳이 좋았다.
아시아 여행은 절을 다니는 거라면 유럽 여행은 성당을 다니는 거겠지. 디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간 곳은 디낭 성당이었다. 소박한 크기였다.
성당 들어가는 입구에 이런 그림이 그려져있다. 보통 성화가 그려져있는반면 이런 민화(?)가 그려져있어서 더 좋았다. 브르타뉴 지방의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교회를 가는 모습인가보다. 귀여워.
교회 외관처럼 내부도 소박한 느낌.
디낭의 진짜 매력은 길거리에 있다. 오래된 목조 건물과 돌길이 멋스럽다. 중세스러운 느낌에 쉽게 홀리는 나는 좋다는 찬사를 남발하며 사진을 찍고 다녔다.
예전에 생말로에서도 느낀 건데, 브르타뉴 지방은 이런 예쁜 간판을 만드는 걸 좋아했나보다. 길 표지판도, 식당 간판도 개성이 넘친다.
돌길을 쭉 따라 걸어 내려오면, 디낭의 아담한 항구가 나온다.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의 이 작은 동네를 천천히 걷다보니 내가 왜 그렇게 힘들게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낮잠을 자는 고양이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버스에서 디낭에 도착하는 길에 봤던 그 로마교 밑으로 내려왔다. 와, 정말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온갖 사건사고에 치여서 쉬는 날조차 그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못한 느낌이었는데, 디낭이 내게 준 여유는 정말 선물같았다. 이런 여유를 누려도 되는건지 황송했다.
다시 디낭 시가지로 올라가는 길. 우리는 배가 고팠다.
왠지 저 문을 열어보고 싶다. 저런 죽은 느낌의 파란 색이 좋다.
브르타뉴 지방의 명물은 크레페다. 하지만 배가 고팠던 나는 크레페로는 간에 기별도 갈 것 같지 않았으므로 크레페 가게에서 오믈렛을 시켰다. 오믈렛도 브르타뉴 지방의 명물....에 끼는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배도 부르니 따뜻해져서 서점에 들어갔다. 나는 유럽 동화책의 색감이 좋다. 우리나라 동화책의 색감도 좋은데, 만화 캐릭터를 주제로 한 어린이용 책들은 색이 너무 공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린 시절에는 따뜻하고 다양한 색감을 많이 접하는게 정서상 좋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다. 컴퓨터에서 너무 그대로 뽑아낸 듯한 인위적인 색으로 가득 찬 일부 우리나라 어린이 책들을 보다보면 좀 서글프다.
헨느로 돌아가기 전 아쉬워서 괜히 디낭의 거리를 한번 더 찍어봤다. 내가 핸드폰이 아니라 DSLR로 찍었더라면 그 느낌이 더 잘 살아났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