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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5 런던/남프랑스/스위스

[2015 유럽여행 기록 15] 스위스 첫째날(2) - 융프라우(Jungfrau)에 올라가기

2015년 5월 2일. 여행 열번째날(2)




오전부터 시작한 하이킹을 빙자한 산책을 끝내고 나니, 어느덧 시간이 오후 3시가 다 되어갔다. 융프라우에 올라갈까말까 고민이 됐다. 호텔 직원에게 지금 이 시간에도 융프라우에 올라갈 수 있냐고 물어보니, 둘러보는 시간을 포함한다면 지금도 시간이 빠듯하니 빨리 역으로 가라고 했다. 여유롭게 오전 내내 산책을 하며 유유자적 시간을 보낸 우리는 혹여나 융프라우에 못 올라갈까봐 갑자기 급해져서(직전까지만해도 갈까말까 고민을 했는데..) 부랴부랴 역으로 갔다. 인터넷으로 미리 뽑아간 동신항운 할인티켓을 내밀고 융프라우 왕복 표를 사자마자 기차에 올라탔고, 기차는 거의 우리가 올라가자마자 곧바로 출발했다.



우리가 타자마자 기차가 떠나서 성취감을 느낀 엄마와 나.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우리가 상상한 스위스 산골 마을 풍경 그 자체다. 




융프라우로 올라가려면, 클라이네 샤이덱 역에서 한번 갈아타야 한다. 이 역에서 융프라우를 갈아타는 건 장담하건데 유럽의 모든 갈아타는 기차 여정 중에 제일 쉽다. 아예 글자를 모르는 문맹이어도 된다. 그냥 단체관광객들을 따라가기만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역에 내리면, 수많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만나게 되므로 본격적으로 이 곳이 스위스인지 중국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 열차는 융프라우에 도착하기까지 각 코스에 대해 영어부터 시작해서 독어, 불어, 중국어, 일본어, 그리고 무려 한국어로까지 설명을 해준다. 중간중간 아이거 빙벽같은 유명한 지점에서는 잠시 정차해 내려서 둘러볼 수도 있게해준다.



내가 아이거 빙벽에 내렸을 때는 날씨가 좋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융프라우에서도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건 아니겠지 두려움에 떨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을 내다봤다. 어쨌거나 이게 아이거 빙벽이라고 하니, 믿음의 눈으로 아이거 빙벽을 봅니다. 



화장실이 몹시 급해 아이거 빙벽 역에 있는 화장실에 갔는데, 중국인 관광객 틈바구니에서 줄을 서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몹시 유명한 관광지에 가고 있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비록 나는 중국인들의 그 높은 톤의 우렁찬 말소리를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고산병의 약한 증세인지 그조차 내 귀에는 점점 신나는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융프라우역에 내리자마자,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융프라우 설원을 볼 수 있는 전망대로 올라갔다. 전망대로 나가는 길엔 무려 시계점도 있다. 저질체력인지라, 우리 둘 다 점점 심장이 둥둥뛰고 속이 미식거리는 약한 고산증세를 체험하게 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아이거 빙벽과는 달리 다행히도 우리의 눈 앞엔, 멋진 융프라우 설원이 펼쳐졌다. 



감격적이라 또 한번 찍어봤다. 



사실 융프라우에 올라오기 전, 유* 카페 후기를 비롯해 스위스에 미리 다녀온 수많은 사람들이 스위스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볼거리 중 하나로 융프라우를 꼽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글쎄, 내가 스위스는 처음 와보고 알프스를 거의 처음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절대로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물론 날씨가 좋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면 당연히 실망(+분노...... 융프라우로 올라오는 표값은 솔직히 너무 비쌈)했겠지만.  평생 이런 높은 산에 직접 내 발로 올라갈 일이 없을, 천성이 게으른 나같은 사람에겐, 융프라우는 '내가 이렇게 높은 곳에도 와보다니' 하는 기대 이상의 감격을 안겼다. 



근데 웬 새들이 너무 많이 날라다녀서 새 공포증이 있는 나는 좀 당황했음.



하여튼 융프라우요흐 전망대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이렇게 뚫려있는 바닥은 조금 흥미진진 무섭기도 하다.



전망대 옆쪽으로 가면, 또다른 봉우리가 눈에 보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아좋아.



그렇지만 여전히 새가 너무 많다. 



너무 춥고 약한 고산증세를 겪느라 속이 미식거려서 밑으로 내려왔다. 안에서 창 밖으로 보는 알프스의 풍경도 꽤 멋지다.




어쨌든 고생고생(=비싸게 주고) 이 꼭대기까지 올라왔으니 기념사진은 꼭 찍어야한다.



내려가는 길에 얼음궁전을 지나가게 되어있는데 솔직히 별 감흥없었고, 우리는 그저 어디 앉아서 쉬고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먹게 된 컵라면. 저 신라면 소컵이 한화로 거의 만원쯤 한다. 융프라우에서 컵라면을 먹는건 한국 관광객이라면 필수로 해야 할 일종의 액티비티같은 거다. 사실 나는 저 스낵바에 가기 직전까지만해도, 도대체 쪽팔리게 왜 그런걸 그 위까지 올라가서 먹냐고 쿨한 여행객인척 했지만...... 일단 냄새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라면 냄새는 진짜 너무 심하게 매혹적이다. 돈 주고 사먹으려고했는데, 내 앞에 있는 한국인 무리가 동신항운 티켓을 내밀고 공짜로 라면을 받는 걸 보고 나도 티켓을 들이밀었더니 스낵바 직원이 컵라면 두 개를 줬다. 헐. 이런 대박 행운이!!!! 그래서 우리는 1인 1컵라면을 하게되었다. 진짜 맛있다. 라면은 언제나 맛있어. 



스낵바 창밖엔 알프스 설원이 펼쳐져있기때문에, 익숙한 고향의 맛을 느끼는 우리는 불쑥불쑥 이 곳이 스위스임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스낵바는 사실 한국인 천지다. 융프라우요흐 전망대의 모든 장소 중에 유일하게 중국인보다 한국인이 많은 장소가 아닐까 싶다. 아예 컵라면을 싸온 사람들도 있다(다음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심지어 인터라켄 역의 쿱에서는 아예 신라면을 팔기도 한다.... 진정한 글로벌 기업은 어쩌면 농심이 아닐까?). 팩소주를 사와서 컵라면과 함께 마시는 장면을 연출하는 분들도 계신다. 다 좋은데, 제발 쓰레기는 좀 깨끗하게 버렸으면 좋겠다. 이 곳에서 컵라면을 먹는 사람은 너무 당연하게 거의 99.9999% 의 확률로 한국인인데, 이미 이 스낵바의 직원들은 신라면과 신라면에 환장하는 한국인들에게 매우 질린 듯했다. 



어쨌거나 컵라면을 재빠르게 끝장낸 우리는 기념품점에서 엽서를 하나 사와 집으로 보내려고 집에 남아있는 불쌍한 남자들에게 카드를 썼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우체통에 엽서를 쏘옥. 



컵라면을 먹어도 여전히 약한 고산증세에 시달린 우리는 그냥 빨리 기차에 미리 타있기 위해 역으로 돌아왔다. 엄마랑 내가 돌아가면서 한명씩 기념사진을 찍어주는데, 기차 운행을 준비하고 있던 역무원 아저씨가 몹시 애잔한 표정을 지으며 자애롭게 우리 둘을 세워놓고 기념사진을 찍어줬다. 



그리고 기차 앞에 서보라며 한번 더 찍어주기까지. 당케, 친절한 아저씨.



내려가는 길에 검표하는 역무원은 모든 탑승객들에게 기념으로 융프라우 기념 초콜렛을 하나씩 나눠줬다. 엄마는 초콜렛을 받고 아이처럼 기뻐하며 아껴먹겠다고 했지만, 배가 고팠던 나는 사진을 찍고 곧바로 내 입속으로 넣어버렸다. 낭만따위 없는 나란 잉간...ㅎ.ㅎ....



내려오는 길 날씨가 여전히 흐리다.




다시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그린델발트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그와중에 어떤 기차는 아예 삼성 스폰을 받았는지 로고가 크게 박혀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삼성은 절대로 농심 신라면만큼 인기있지 않다. 



우리의 눈 앞에 이제는 익숙한 광경이 펼쳐진다. 융프라우 구경을 잘 마치고 우리는 그린델발트로 무사히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