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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새해 - '유독 자주 보이는 이름'을 기대하며


SF영화에서나 나올것같던 2011년이 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내가 생각하는 2011년은 모든것이 컴퓨터로 작동 및 관리되며, 사람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마치 자전거처럼 쉽게 타고다니는, 그런 '머나먼 미래의 해'였다. 나는 손으로 뭔가를 적는 인간의 오래된 문화가 사라질까봐 무서워했고, 더 이상 사람들이 직접 시장을 보지 않을까봐 걱정했다. 다행히 2011년은 그런 '머나먼 미래의 해'가 아닌(물론 그 전조증상은 보이지만), 그냥 2011년이었다. 새해를 맞기 전, 나는 예년처럼 평화롭게(그리고 사치스럽게) 2011년의 일상을 적을 수첩을 골랐다.

나는 교보문고에서 샘플로 내놓는 다이어리들처럼 수첩을 예쁘게 꾸밀줄을 모른다. 일단 그럴만한 재주와 재료가 없고(색색의 색연필같은게 분명히 집에 있었는데 어딨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렇게 꾸미는 것이 귀찮다. 내 수첩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모월 모일: 누구와 어디에서 무엇'식의 문장 아닌 문장만 가득이다. '완전 맛있다!' 같은, 그 행위에 대한 소감도 잘 등장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기록할 '오늘의 행위에 대한 무미건조한 보고'가 많기 때문이다.(아니면 귀찮기 때문일까?) 글씨체도 1월 둘째주 정도까지만 깨끗하다. 새 수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고, 그 이후엔 내멋대로 이것저것 휘갈긴다.

'막 쓰여진' 수첩이지만, 놀랍게도 이 수첩은 나의 한 해를 정의해준다. 바로 누군가의 이름을 통해서다.

가족이나 예전부터 친해왔던 친구처럼 정기적으로 등장하는 이름도 물론 있다. 이럴 경우엔 귀찮아서, 그리고 너무 뻔해서 생략할때가 많다. '모월 모일 홍대에서 일본라멘'처럼. 하지만 그 해에만, 혹은 그 시기에만 유독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그 이름들은 나의 한 해, 한 시기의 특징이나 매한가지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옛 수첩을 다시 뒤적거렸을때 내 마음을 아릿하게 하는건, 장소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지난해(2010년) 수첩에도 역시 그런 이름들이 있다. 이 이름들은 올해에도,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등장하겠지만(그러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작년처럼 '유독' 등장하긴 힘들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2010년의 누군가의 이름은, 그 자체로 내 2010년이었다. 그리고 내 2010년의 행복이었다.

그냥 보통의 2011년이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되었다. 일주일마다 한장을 쓰게끔 되어있는 내 수첩은 아직 한장도 넘어가지 않았다. 역시나 예쁘게 꾸며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 소감따위도 등장할리 만무하다. 올해도 나는 평범해서 오히려 특별한 내 일상을 보고하듯 적어낼 것이다. 막 쓰여진 수첩이 또 한권 탄생할 것이다. '유독 자주 보이는 이름'과 함께. 그렇게 나는, 올해 또한 역시 결국엔 특별해질 것임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린다. 지금은 비록 그냥 보통의 2011년이지만 말이다.